영화 곡성 시나리오
- 시나리오
- 2018. 5. 6. 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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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프닝 자막
자막 그들은 놀라고 무서움에 사로잡혀서,
유령을 보고 있는 줄로 생각하였다.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어찌하여 너희는 당황하느냐?
어찌하여 마음에 의심을 품느냐?
내 손과 내 발을 보아라.
바로 나다.
나를 만져 보아라.
유령은 살과 뼈가 없지만,
너희가 보다시피,
나는 살과 뼈가 있다.”
누가 복음 24장 37-39절
1. 섬진강 변 / 낮
섬진강 변 중 가장 풍경이 좋은 곳.
띄엄띄엄 앉은 몇 명의 남자들이 낚시 중이다.
그들 중 한 노인이 지렁이를 꿰며 저편을 응시하고 있다.
심기가 좋아 보이질 않는다. 중얼대고 있다. 고약해 보인다.
소리 취기 가득한 남자들의 커다란 목소리와 아낙네들의 웃음 소리.
인상을 찌푸린 노인의 시선을 따라가 보면,
짝을 맞춰 놀러 온 중년의 남녀들이 커다란 양은솥에 뭔가를 끓여 먹고 있다.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 잔뜩 술에 취한 것으로 보인다.
그들 중 한 여자가 노인을 바라본다.
(시간 경과)
(여자) 어르신 많이 잡았어라?
노인에게 다가온 여자.
술이 올라 얼굴이 빨개진 중년의 여자인데,
그녀의 두 손엔 스테인리스 그릇이 들려있다.
보니 고깃덩어리가 가득한 빨간 국물이 담겨있다.
여자 시끄라갖고 괴기 다 도망가붓겄네.
지송혀라. 오늘 즈이 남편 생일이라갖고.
닭도리탕인디 들어보시요. 쐬주도 한 잔 받으시고.
그릇을 노인의 앞에 내려놓은 여자가 겨드랑이에 끼고 온 소주를 종이컵에 따른다.
여자를 보니 참하게 생겼는데, 술에 취해서인지 옷 매무새가 흐트러졌다.
가슴 골이 보인다.
여자 (술잔을 건네며) 자.
술을 받아 든 노인이 묘한 눈길로 여자를 보더니 음식을 빤히 쳐다본다.
여자 얼릉 드셔라. 얼큰한 것이 지대로...
노인 (日) (음식을 뒤적이더니) 이거 개고기지?
これ犬の肉だろ?
(코레 이누노 니쿠다로?)
삐딱한 표정으로 내뱉은 말이 난데없는 일본어다.
여자 이?
노인 (日) 이거 개고기냐고.
これ犬の肉だろうって。
(코레 이누노 니쿠다롯데.)
여자 아, 일본 분이요?
아니 이 촌구석에 일본 냥반이 뭔 일로 와 있디야.
한국말 허요?
노인 .......
여자 못 헌갑네. 얼릉 드시어라. 닭. 닭. 쭉쭉. 얼큰혀. 얼큰.
노인의 시선으로 쭈그리고 앉은 여자의 허벅지가 보인다.
노인 (日) 니들 이 개고기 먹고 떼씹하러 갈 생각이지?
お前ら犬の肉食ってやりまくろうって魂胆だろ?
(오마에라 이누노 니쿠 쿳데 야리마쿠로웃데콘탄다로?)
여자 (日) 니들? 생각?
オマエラ?コンタン?
(오마에라? 콘탄?)
노인 (日) (웃으며) 생각.
魂胆。
(콘탄.)
여자 (日) (웃으며) 생각. 생각.
コンタン。コンタン。
(콘탄. 콘탄.)
노인 (日) (웃으며) 다마네기.
たまねぎ。
(다마네기.)
여자 다마네기?
노인의 말을 따라 하던 여자가 크게 웃는다.
그러자 노인도 따라 웃는가 싶더니,
갑자기 치마 속에 손을 불쑥 집어넣는다.
놀란 여자가 짧은 비명을 지르며 주저앉는다.
떨어져 구르는 소주병.
노인 (日) 더럽고 음탕한 암캐년.
この汚い淫売め。
(코노 키타나이 바이타메.)
놀라 겁먹은 여자가 헐떡이며 아무 저항도 못한다.
노인이 저편의 일행들을 보더니 여자를 내려다본다.
화면 가득한 그의 얼굴이 사악하기 그지없다.
2. 읍내 정육점 / 낮
타일로 꾸며진 오래된 내부.
구석에 놓인 테이블에 김치와 육회를 안주로 막걸리를 마시는 중년 남자들.
군복, 추리닝, 양복 등 촌스런 차림의 그들이
천장에 매달린 고기를 손질 중인 주인(병규)의 얘기를 듣고 있다.
양복 그래갖고. 그래갖고 워치케 됐는디?
코가 벌게진 양복 차림의 남자가 진지한 얼굴로 병규에게 묻는다.
병규 아 치마 속에 손이 드가 붓는디 어찌코 됐겄냐.
노인네가 겁나 꼴래갖고 쩌어 뒤에 갈대밭으로 끌고 가부렀제.
양복 (부들부들 떨며) 그래갖고.
병규 거서 그 여편넬 덮칠라고
어그지로 빤스를 뱃기고 뚜드러 패고 막 난리를 처부는디
재수 좋게 오줌 누러 온 서방이 그 꼴을 봐부렀네?
그래갖고 싹 다 달려가 막 디지게 처봅고 뚜드러 패뿌렸다는 거 아녀.
시방도 보믄 한 짝 다릴 쩔룩쩔룩 허제?
고것이 그려서 그런 거여.
병규의 말이 끝나자 흥분한 양복이 막걸리를 들이킨다.
양복 참말이여?
병규 (고개를 끄덕이자)
양복 그런 씨부랄 작것이 암시랑도 않케 동넬 싸돌아 댕긴다고?
병규 그렇당게.
양복 아이 종구야. 니 알고 있었냐?
종구 첨 듣는디... 들응께 열이 확 뻗쳐부네. 써글...
양복 이런 니미... (병규에게) 니 그 말 참말이제?
병규 아 근당께.
양복 그 쪽바리 새끼... (일어나며) 아야 칼 갖고 와. 시발 콱 모가지 썰어 쥑일텡께.
여가 어데라고 왜노무 개새끼가...
양복이 쌍 욕을 퍼부으며 주방으로 가 거대한 식칼을 들고 염병을 떤다.
이를 본 친구들이 크게 웃으며 좋아라 하는데 양복이 밖으로 나가버린다.
종구 (걱정된 듯) 야. 야... 니미... 아, 느그들은 시방 말게도 않고 뭐더냐?
군복 저 지랄허다 들올껴.
종구 지랄은...
(나가며, 병규에게) 니는 왜 씨잘데없는 소릴 지껄여쌓고.
병규 아 참말이랑께.
밖으로 나온 종구가 보니,
양복은 인도 저편에서 정육점 안주인(병규처)에게 맞고 있다.
병규처 이 똥물에 튀겨 쥑일 놈이.
아, 술에 췠으먼 어데 끼재 가갖고 쳐 자빠져 자든가.
대낮에 식칼을 쳐들고.
(뭐를 찌새 불라고. 이? 나 찌새 불라고? 아나 찌새라! 배때지 연한께. 찌새라고!)
(양복) 우이씨...
(병규처) 아 칼 안 내려놔!
양복이 욕설을 하며 저항하지만 거구의 병규처에게 어림없다.
종구 저... 빙신 겉은 놈.
순간 그의 옆으로 작은 아이가 다가와 선다.
효진 왜 처 맞는당가?
종구 학교 끝났냐?
효진 이. 술 처묵고 또 난장폈는갑네.
종구 보지 말어. 집에 가.
효진 같이 가. 엄마가 아부지 데꼬 오랬어.
종구 아부지 일 있어.
효진 없는 거 알어.
종구 있어.
효진 머. 먼 일인디?
종구 (보면)
효진 맥없이 엄마헌티 욕 얻어묵지 말고 가자.
오널 할아부지 제산디 일찍일찍 다녀야제.
종구가 효진을 내려다보며 웃는다.
3. 도로 / 낮
종구가 효진을 오토바이의 앞에 태우고 국도를 달린다.
좌우의 오래된 가로수와 그 너머의 널찍한 논밭. 햇살.
아무 말없이 바람을 가르며 달리는 부녀의 모습.
효진이 종구의 얼굴을 올려다보며 미소 짓자, 종구도 웃는다.
타이틀 / 哭聲 곡성
4. 전종구의 집 / 새벽 / 비
마을 속 한옥 전경.
종구와 부인이 잠들어있는 안방.
‘오성복’이란 이름을 보이며 종구의 핸드폰이 울리고 있다.
종구가 눈을 뜬다.
(시간 경과)
잠이 덜 깬 종구가 벽에 걸린 경찰복을 입고 있다.
부인 (이불에 누운 채) 뭔 일이대. 이 새벽에.
종구 사람이 죽었다는구마.
부인 누가?
종구 거 인삼 키우는 조씨 있제?
부인 이...
종구 그 냥반 마누라가 죽었디야.
놀랍다는 듯 부인이 몸을 일으켜 앉는다.
(시간 경과)
이제 동이 트려 하는 파란 새벽.
제복을 다 차려 입은 종구가 마루에 앉아 구두를 신고 있다.
(장모) 어이 으디 강가?
장모가 부엌에서 나오며 묻는다.
종구 사람이 죽었대요.
장모 누가야.
종구 인삼 키우는 조씨 마누라가 죽었단디 지도 잘 모르겄네요.
장모 아이가. 그 집 색시믄은... 아적 애잖여.
종구 긍께요.
우비를 찾아 걸친 종구가 집을 나서려 한다.
장모 글도 아침은 묵고 가야제.
종구 얼릉 가봐야 디요.
장모 아 한 숟꾸룩만 뜨고 가.
거 빨리 간다고 죽어분 것이 살아분 것도 아니고.
종구 시방 가봐얀디.
장모 (살짝 성내며) 아 묵고 가라고 안 허요.
전종구가 난감해 한다.
(시간 경과)
마루에 앉은 종구가 혼자 밥을 먹고 있다.
부인과 장모가 그런 그를 빤히 바라보고 있다.
부인 왜 그랬대?
종구 아적 모른당께. 누가 죽였다 그런 것 같던디...
부인 이?
(효진) 누가 죽었디야?
효진이 올라와 밥상에 앉아 숟가락을 든다.
머쓱해하는 어른들.
효진 (밥 먹으며) 누가 죽었는디?
종구가 더 이상 대답하기 싫어한다.
5. 초등학교 앞 / 아침 / 비
종구의 낡은 차가 정문 앞에 선다.
차에서 내린 효진이 인사를 하고 뛰어 들어간다.
종구의 차가 출발한다.
6. 몽타주 – 현장으로 향하는 전종구의 차 / 아침 / 비
널찍한 논 사이를, 구불구불한 시골 도로를 달리는 차량의 모습들.
7. 조씨의 집 / 아침 / 비
2대의 순찰차 뒤로 종구의 차가 도착한다.
그가 차에서 내리자 오열하는 친척들과 구경꾼들을 통제하던 오성복이 다가온다.
성복 (다급히, 목소리를 낮추며) 아 왜 이르케 늦어요.
사람이 둘이나 죽었구마.
종구 소장은 아적 안 왔냐?
성복 소장님 서울 갔잖소.
종구 아 그렇제.
종구가 성복을 따라 대문 안으로 들어가니
30대 중반의 남자, 흥국이 수갑을 찬 채 툇마루에 기대앉아 있고,
그 앞으로 또 다른 경찰이 그를 나무라고 있다.
경찰1 아 말을 허랑께. 흥국아. 니 워쩌자고.
니 약 묵었냐? 이? 꼬라지가 이게 뭐여.
종구의 시선으로 보이는 흥국은 기괴한 상태다.
비에 흠뻑 젖은 그의 한쪽 얼굴은 시뻘겋고, 그 안엔 좁쌀만한 수포가 가득하다.
다리미 자국처럼 보이는 화상 자국도 있다.
머리털은 여기저기 빠져 있고, 그 속의 피부 역시 그러하다.
회색의 눈동자는 풀려 있고,
벌어진 입 속으로 보이는 누런 이빨은 몇 개가 뽑혀 나가 있다.
무엇보다 기괴한 것은 뼈 밖에 없는 몰골이다.
당장에 죽는다 해도 이상할 것이 없는 상태다.
그들을 지나친 성복이 마루로 올라가 머뭇거리는 종구를 부른다.
종구는 겁이 나는지 심호흡을 하고는 마루를 오른다.
눈을 감은 그가 숨을 들이키며 눈을 뜨면,
피범벅이 된 내부가 보이고, 그 한복판에 드러누운 젊은 여자의 시신이 보인다.
경찰2 경사님 오셨어라.
종구 이... 이.
경찰2 (낫을 보이며) 이것으로 근 것 같은디.
얼핏 봐도 스무 군데가 넘소.
종구가 숨을 몰아 쉬며 공포를 이겨내려 한다.
그러자 정신이 드는지 내부를 둘러본다.
커다란 자루에 남자로 추정되는 시신의 일부가 보인다.
경찰2 여그서 쥑인 것 같진 않고, 워서 한참을 끌고 온 것 같소.
저 냥반도 살벌허게...
종구 저 냥반이 조씨여? 남편?
경찰2 예. 그런 것 같으요.
종구 써글... (유아 용품을 보더니) 아는.
성복 친척 집에 데따 놨어라.
종구 (잠시) 왜 그랬디야?
성복 술냄시도 안 나고. 통 말을 안 허네.
종구가 흥국을 다시 돌아본다.
그러자 흥국도 모가지가 부러진 이마냥 고개를 들어 종구를 본다.
회색의 두 눈이 구멍 같다.
벌어진 입에서 침이 흘러내린다.
겁먹은 얼굴로 그를 노려보는 종구.
성복 뭣을 잘 못 묵은 것 같소.
아 꼬라지가 갑자기 저 모냥이 된 걸 봉께.
그때 구경꾼들을 밀치며 형사 기동대 차량과 119 차량이 대문 앞에 선다.
형사 4명과 구조대원들이 내려 마당으로 들어선다.
형사1 앗따, 시방 요거이 먼 난리다냐이. 경사님 잘 지냈소?
나머지 형사들도 목례를 한다.
종구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또 다시 흥국을 내려다본다.
(시간 경과)
119 차량이 사람들을 밀치며 떠나간다.
경찰1, 2는 대문에서 통제 중이고,
종구와 성복은 대문 앞에 세워진 순찰차 안에 앉아
집 안에 남은 형사들이 조사하는 것을 보고 있다.
성복이 다시방에서 포장된 한약재를 2개 꺼내 하나를 종구에게 건넨다.
성복 (까 마시며) 허... 이 촌구석에... 벨일이 다 있네...
착잡한 얼굴의 종구가 한숨을 내쉬며 주변을 둘러본다.
저 멀리 어슬렁대는 유기견의 모습이 보인다.
구름이 잔뜩 낀 하늘엔 시커먼 새들이 어지럽게 떠돌고 있다.
음산하다.
그렇게 주변을 보는 종구의 시선에 저 멀리 누군가가 보인다.
언덕배기 위에 선 유일한 사람이다.
두 눈을 찡그리며 자세히 보니, 비 오는 날임에도 낚시 장비를 멘 일본 노인이다.
어제 들은 소문이 떠올랐는지 종구는 얼굴을 찌푸리며 그를 지켜본다.
(형사1) 저 경사님.
불쑥 고개를 들이미는 형사1 때문에 슬쩍 놀라는 종구.
종구 이.
형사1 우리 그 냥반 집 쫌 가봐야 쓰겄는디 안내 좀 혀주씨요.
종구 (잠시) 박흥국이네?
형사1 예.
8. 산속의 도로 / 아침 / 비
종구와 성복이 탄 순찰차가 이동 중이다.
형기차가 뒤를 쫓는다.
종구 (백미러 보며) 써글 노무 새끼... 네비 찍으믄 나오는 것을...
꼭 안내를 혀라 마라... 쩌어기 아녀?
차창 너머 저 멀리 산속의 사육장이 보인다.
9. 흥국의 돼지 사육장 / 아침 / 비
사육장 옆에 딸린 2칸짜리 농가.
방문이 열리자 피범벅이 된 내부가 보인다.
형사1, 2와 종구, 성복이 들여다본다.
형사1 아이고. 조씨는 여서 쥑였구마. 이것이 다 뭐다냐, 씨벌...
(긍께 조씨를 불러다놓고, 여서 쥑인 담에, 자루에 넣어서,
그걸 또 끌고 가갖고, 마누라까정 쥑인거여? 이?)
(형사2) 치정이구마. 치정.
더 이상 보기가 싫은 지 종구는 그곳을 벗어나 사육장으로 향한다.
넓은 사육장에 돼지라곤 달랑 3마리뿐이다.
저 편을 보니 흙더미들 사이로 죽은 돼지의 일부가 드러나 보인다.
무슨 이유에선지 폐사한 돼지들을 묻은 흙이 빗물에 씻겨간 듯싶다.
얼굴을 찌푸리는 종구의 눈에 말라붙은 꽃이 보인다.
누군가가 기둥에 꽂아 놓은 꽃인데 (금어초 金魚草),
갈색으로 시든 꽃잎들이 해골의 형상을 하고 있다.
(성복) 저 형님. 형님!
종구 (보면)
형사1 (다른 방문 앞에서 코를 막은 채) 경사님. 여 쪼께 와 보시요.
종구가 다가가자 잔뜩 얼굴을 찌푸린 형사1이 들여다보라 손짓한다.
보니 난리인 내부가 보인다.
악취가 진동하는 방 안엔 온갖 오물과 죽은 짐승들이 이불 등의 집기와 엉켜 쌓여 있다.
새의 둥지 같은 형상이다.
주변으론 찢겨나간 성경과 염주와 십자가 등 종교적인 소품들이 파손된 채 나뒹군다.
벽에는 흙과 피와 먹으로 그리고 쓴 종교적이고 기이한 내용들이 가득하다.
형사1 이... 이 씨벌새끼... 이 새끼 도대체 뭐던 놈의 새끼요?
화면 가득한 종구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10. 깊은 산속 / 낮
웅장한 산맥의 모습.
50대 남자인 덕기가 배낭과 망태기를 메고 수풀을 걷는다.
망태기 속엔 약초가 한 가득 이다.
숲을 한 꺼풀 벗어나니 올가미에 발목을 잡힌 고라니가 철사에 칭칭 감겨 죽어있다.
벗어나려 몸부림치느라 이리 된 듯.
덕기가 철사를 풀더니 고라니의 발목을 잡고 반동을 이용해 어깨로 넘긴다.
그런데 그 무게를 못 이기고 비탈로 굴러 떨어진다.
한참을 구른 덕기가 돌덩이에 머리를 부딪치고 의식을 잃는다.
11. 깊은 산 속 / 아침 / 비
빗방울에 눈을 뜨는 덕기.
머리가 지끈거리는 지 인상을 쓰며 몸을 일으켜 세운다.
그런데 무엇을 봤는지 놀라며 수풀 뒤에 몸을 숨긴다.
겁에 질린 덕기의 모습.
그의 시선을 쫓으면,
발가벗은 일본 노인이 죽은 고라니의 내장을 파먹고 있다.
그러더니 짐승처럼 네발로 기어가 배낭을 뒤진다.
온갖 야생동물들이 나오자 냄새를 맡아본다.
구미가 당기지 않는지 다시 고라니로 가 내장을 뜯어먹는다.
그때 덕기의 발이 미끄러지며 돌멩이가 구른다.
소리를 들은 일본 노인이 수풀 속의 덕기를 노려본다.
입가에 피가 흥건한 노인의 두 눈이 붉은색이다.
사람이 아닌 짐승의 모습이다.
12. 곡성 파출소 / 밤 / 비
성복 겁나 무섭지라?
창 밖에선 천둥 소리가 들려온다.
종구 무섭긴. 걸 말이라고 떠드냐?
성복 여하튼 요런 소문이 돌드라고.
종구 누가 혀 준 얘기여?
성복 뱅규 형님.
종구 하. 그 새끼. 인자 너한테까정 떠들어쌓네.
성복 근디요. 소문을 들어봉께 그 냥반이 뭣이 있긴 헌갑디다.
종구 뭣이 있어.
성복 생각해 보소. 쩌어기 다리께에 가게 쥔 실성했지라?
방앗간 하납씨 급사했지라? 글고 엊그제 흥국이 그랬지라?
종구 근디.
성복 싹 다 거 일본 냥반이 오고 나서 생긴 일들이요.
종구 (웃음) 아나 이 새끼...
겁나 무식혀 갖고. 허는 소리마다.
성복 아니. 왜 거그서 무식이 나와?
종구 오늘 흥국이 놈 검사 결과 나왔디야.
이상헌 버섯을 잘 못 처묵어갖고 근닥하드라.
성복 이?
종구 묵으먼 헥까닥 도는 버섯 있제?
그 성분이 혈액서 음청 나왔디야.
집에서도 거 말린 것이 겁나게 나와부렀고.
긍께... 헛소리 말어.
성복 아이 형님. 형님은 시방 그 말을 믿으요?
종구 결과가 나왔당께.
성복 아 형님은 어릴 때 요상헌 버섯 안 묵어 봤소?
거 처묵었다고 사람이 그리 되진 않어라.
갸 꼬라지 봤잖소?
고거이 버섯 잘 못 묵은 놈 꼬라지요?
종구 .......
성복 아마도 내 말이 맞을 것이오.
요로케 소문이 파다하믄 말요.
무신 이유가 있는 거요. 이유가.
성복의 말에 귀가 솔깃해지는지 생각하는 종구.
순간 번쩍하고 천둥 번개가 치더니 정전이 된다.
종구 씨벌. 뭣이여.
성복 니미... 또 전기 나가부렀네.
성복이 두꺼비집으로 향한다.
종구 거 소장 참...
회식헐 돈 있으먼 전기 공사나 혀도라 그르케 말혀도...
순간 또다시 번개가 친다.
그런데 그 불빛으로 인해 출입구 너머에 선 웬 여자의 모습이 보인다.
워낙에 순간적이라 정확하진 않았지만,
비에 쫄딱 젖은 채 머리를 풀고 옷을 홀딱 벗은 여자였다.
깜짝 놀란 종구가 비명을 지르며 뒤로 자빠진다.
성복 뭐요? 뭐요?
종구 배깥... 저 배깥에...
성복 배깥에. 배깥에 뭐!
겁에 질린 둘이 고함만 지를 뿐 나가보지는 못하는데,
또다시 번개가 치며 여자가 보인다.
둘 으아악!
책상 뒤에 숨는 둘.
종구 나, 나가 봐.
성복 .......
종구 아 나가 보랑께!
종구의 재촉에 성복이 진압봉을 들고 나간다.
비 내리는 밖엔 아무도 없다.
13. 전종구의 집 / 낮
INSERT) 좀 전에 비가 그친 마을의 이미지들.
좀 전에 비가 그친 전종구의 집 전경.
안방.
잠자는 종구.
안 좋은 꿈을 꾸나 보다.
신음을 내며 해대는 잠꼬대가 심하다.
종구 으아악!
결국 지랄발광을 하며 깨어난다.
일어나 헐떡대던 그가 마루를 보면,
식사 중인 장모와 효진이 보인다.
어이가 없는지 무표정한 그들.
민망한 얼굴의 종구가 슬며시 일어나 밥상으로 가 앉는다.
아무 말없이 빤히 종구를 쳐다보는 장모와 효진.
그 시선을 피하며 밥숟가락을 뜨는데,
(소리) 물을 첨벙이는 소리.
종구가 마당을 보니 부인이 빨래 중이다.
자신을 노려보는 부인.
치마를 걷어 올려 허벅지가 훤히 드러나 있다.
불안한 얼굴로 부인을 쳐다보는 종구.
14. 전종구의 집 주변 공터 / 낮
마을 뒤편의 으슥한 공터에 세워진 낡은 승용차.
종구와 부인이 뒷자리에서 섹스 중이다.
사정을 하자 드러눕는 종구와 부인.
종구 (헐떡) 앗따... 심들어 모더겄다. 인자.
부인 (옷을 챙겨 입으며) 그런 소리 허덜 말어.
할매들 얘기 들응께 칠십을 묵어도 빨딱빨딱 선단디.
종구 그먼 보약이나 한 첩 혀 주던가.
잘 때마다 지랄 옘병 겉은 꿈을...
차창을 향해 고개를 돌리는 종구의 시선에 시커먼 뭔가가 보인다.
종구 (놀라며) 뭐여, 씨벌.
보니, 언제부턴지 효진이가 두 손을 대고 들여다보고 있다.
종구 효진아... 쩔로 가. 아 쩔로 가!
효진 시방 그 안에서 머허는겨?
부인 (웃음)
종구 아 허긴 뭘 혀! 가라고!
15. 읍내 문방구 / 낮
불량식품을 씹으며 잡다한 것들을 잔뜩 고르는 효진.
머리핀, 핸드폰 케이스, 아이돌 관련 용품들.
머리핀을 꽂으며,
효진 어뗘?
종구 이뻐.
16. 섬진강변 / 낮
버드나무 밑의 종구와 효진.
효진은 생과일 주스를 빨아 마시며 구입한 용품을 만지작거린다.
종구 어디까지 봤냐?
효진 .......
종구 은제부터 봤는디?
효진 걱정 말어. 암말 안 할랑께.
종구 (한숨) 봤구만. 봤어.
효진 걱정 마라고. 처음 본 것도 아녀.
종구가 포기한 얼굴로 강변을 바라본다.
난데없이 주스의 빨대를 들이미는 효진.
왜 이러냐는 듯 종구가 쳐다보면,
효진 괜찮애.
결국 빨대를 빠는 종구.
부녀가 담긴 풍경이 그림 같다.
저 멀리 낚시 중인 노인이 이들을 바라보고 있다.
(소리) 소방차의 사이렌 소리.
17. 권명주의 집 / 밤
저 멀리 보이는 시커먼 연기.
좁아터진 골목에 늘어선 소방차와 구급차, 순찰차들.
그것들의 사이로 종구의 오토바이가 들어선다.
차량들의 사이를 헤집고 현장으로 향하니 숯덩이가 된 한옥이 모습을 보인다.
오토바이에서 내려 사람들을 비집고 들어서는 종구.
그 안에서 고군분투 중이던 소장과 눈이 마주친다.
소장 넌 뭐던다고 인자사 오냐! 전화도 안 받고!
종구 아 자, 장모님이 급체를 해갖고.
소장 시방 이 난리통에 또 장모 핑계여?
딱 봉께 어서 자빠져 자다 왔구마!
종구 지, 지송혀라...
소장이 다시 현장에 집중하는 사이 광경을 둘러보는 종구.
남은 불을 소방관들이 제압 중이고,
구급대원들은 하얀 천에 덮인 시신들을 들것에 들고 나오고 있다.
시커멓게 그을린 안주인(권명주)이 그들에게 달려들며 오열하고 있다.
경찰들이 그녀를 잡아 말린다.
이러한 난장판을 지켜보며 호흡이 가빠지는 종구.
소장 아 저 놈 저거.
야 전종구! 뭣을 그르케 보고만 있냐! 쩌 냥반 안 말게고!
그 말에 종구가 권명주에게로 향한다.
종구 거. 거 아짐 데꼬 가.
(다른 경찰들에게) 어이! 쩌 냥반 데꼬 가라고! 야!
순간 누군가가 종구의 팔을 잡아 끈다.
종구 뭣이여. 놔. 앗따...
보니, 들것에 실려 나오던 시신의 팔이다.
숯이나 다름없는 시신이 시뻘건 눈을 부릅뜨고 뭐라 말하고 있다.
아직 죽지 않은 것이다.
질겁한 종구가 비명을 지르며 진창이 된 바닥에 나자빠진다.
생존자 역시 팔을 놓지 않아 진창에 자빠진다.
그렇게 뒤엉켜 난리를 치는 두 사람.
순간 이를 본 권명주가 경찰들을 뿌리치고 종구에게 달려든다.
괴성을 지르며 전종구를 때리고 할퀴는 권명주.
급히 달려든 경찰과 구급대원들이 권명주와 생존자를 종구에게서 떼어낸다.
아수라장이다.
소장 저 등신 저거...
그렇게 한참을 옥신각신하자 정리되는 현장.
권명주와 생존자가 끌려가고,
진창에 널브러졌던 종구가 몸을 일으켜 앉는다.
주변의 모두가 자신을 보고 있다.
개망신이다.
그럼에도 일어설 힘조차 없어 구경거리가 된 채 헐떡이기만 하는 종구.
순간 그의 눈에 구경꾼 사이의 일본인이 보인다.
낚시 가방을 멘 일본인 역시도 종구를 보고 있다.
한참을 그렇게 바라보던 일본인이 고개를 돌려 권명주를 바라본다.
표정이 묘해진 종구가 그의 시선을 쫓으면,
구급차 앞에서 발악하는 권명주의 옷 사이로 흥국의 것과 흡사한 상처가 보인다.
18. 곡성 파출소 / 밤
전경.
성복이 상황 근무 중이고,
지저분한 몰골의 종구가 소파에 앉아 있다.
성복 형님.
종구 뭐.
성복 좀 시치고 오랑께.
종구 .......
소장 너무 챙피해 허덜 말어. 우째겄냐.
니 간뎅이가 쥐좆만헌데다, 성격이 가시내 겉어 그런 것을.
종구 앗따, 거...
그때 문을 열고 효진이 들어선다.
소장 효진이 왔냐?
효진 안녕하세요.
소장 그려. 잘 지내제?
효진 예.
성복 (봉다리를 보며) 아부지 옷이냐?
효진 에.
성복 아이고 우리 효진이 착허네.
씩 웃으며 종구의 옆에 다가선 효진이 옷가지들이 든 봉다리를 소파 위에 내려놓는다.
효진 (잠시 몰골을 훑더니) 엄마가 갖다 주랴.
종구 고맙다.
효진 (잠시) 좀 시쳐라.
종구 알았어. 가.
효진이 바닥을 보니,
테이블 밑으로 다 먹은 자장면 그릇 2개와 비닐도 뜯지 않은 1개가 보인다.
효진 밥도 안 묵고...
종구 아 가랑께. 성가시게 말고. 아부지 일하잖여.
투정 같은 반응에 효진이 한숨을 내쉰다.
빤히 종구를 쳐다보지만 종구는 눈도 마주치지 않는다.
소리 방귀 소리.
모두가 소리를 향해 고개를 돌리면 효진이다.
그제야 눈이 마주치는 종구와 효진.
효진 나 간다. (나가며) 안녕히 계세요.
종구 쩌 년이 쩌거...
소장 그려. 효진이 가라. 이?
효진 예.
순간 종구가 바닥에 떨어진 머리핀을 본다.
종구 아이. 야, 효진아.
소장 (도로를 건너는 효진을 보며) 나가부렀다. 이눔아.
종구 (머리핀을 주우며) 가시내... 칠칠 맞기는...
순간 종구의 표정이 변한다.
뭔가가 생각난 듯.
종구 야, 성복아...
성복 예.
종구 생각났다.
성복 뭣이요?
종구 그 여자 말여.
성복 누구.
종구 거 불난 집 마누라.
성복 .......
종구 내가 어서 봤는가 생각혀봤는디...
어제 그 깨 할딱 벗은 여자였다.
성복 예?
종구 어저께 정전됐을 때 요 서 있던 여자라고.
성복 .......
INSERT) 번개가 번쩍이며 모습을 보이는 발가벗은 권명주.
성복과 종구의 표정이 묘해진다.
19. 권명주의 집 주변 / 새벽
저 멀리 동이 트는 산동네의 전경.
배달용 오토바이가 마을 언덕을 오르다 나자빠진다.
넘어진 운전자가 뭔가를 보고 놀라고 있다.
시선을 쫓으면,
나무에 목을 매고 죽은 권명주의 시신이 보인다.
그녀의 다리 밑으로 전소된 집이 보인다.
20. 권명주의 집 / 아침
화면 가득한 사진들.
까맣게 타 들어간 피부에 빨간 칼자국들.
형사1 타 죽은 것이 아니라, 칼 맞아 죽은 것이요.
통제된 집 앞에서 종구가 형사1이 건넨 사진들을 보고 있다.
종구 셋 다?
형사1 예. 나도 겁나게 놀래부렀소.
INSERT) 종구를 붙잡고 뭔가를 말하려 하던 생존자.
형사1 (속삭이며) 목매달고 죽은 안주인이 유력헌 용의자요.
종구 (넋이 나간 듯) 앗따... 이것이 먼일이다냐...
형사1 긍께요.
(형사2) 여그. 여그!
종구와 형사1이 들어가 보면,
숯이 된 방 안에 타 들어간 장롱 밑으로 손을 뻗은 형사2가 보인다.
그 안에서 시커먼 식칼을 꺼낸다.
형사2 (집어 올리며) 찾았어라.
21. 곡성 경찰서 / 낮
기자들로 북적거리는 건물 전경.
언론사의 차량들이 들어서고 형사기동대 차량 1대가 나간다.
화면, 형기차를 쫓아가 보면,
길 건너로 정육점이 보이고,
그 앞으로 순찰차에서 내리는 종구가 보인다.
22. 읍내 정육점 / 낮
종구와 병규가 테이블에 앉아 있다.
병규처는 힐끔힐끔 쳐다보며 일한다.
병규 그래갖고. 그 여자가 다 쥑여뿐겨?
종구 (막걸리 들이키고) 이. 근것 같다드라.
병규 하... 씨벌... 일이 이르케 되나?
종구 (육회 집어먹으며) 근디 왜 불렀냐. 디지게 바쁜디.
병규 그 일 땜에 불렀제.
종구 .......
병규 니 쩝때 내가 헌 얘기 기억허냐?
거 일본놈이 여자헌티 거시기혔단 얘기.
종구 이. 왜.
병규 그 여자가. 그 여자랴.
종구 먼 소리여. 고것이.
병규 거 일본놈헌티 당헌 여자가 그 불난 집 여자라고.
종구 .......
병규 그 여자 말여.
그 날 이후로 미쳐부러갖고,
오밤중에 깨 할딱 벗고 돌아 댕기고 막 그랬디야.
종구 .......
병규 울 마누라가 목깐서도 멫 번 봤는디.
몸뚱아리에 기양 막 두드래기가 막 싯뻘게 갖고...
헛소리를 막 머라머라머라 막 씨부렁대싼디...
종구 너 이 새끼... 너 시방 성복이 새끼랑 짜고 장난치는 거제?
병규 미친놈. 사람이 멫이 죽어 나갔는디...
내가 개또라이여?
병규처 (고기 썰며) 참말이여.
종구 (보면)
병규처 그 여자 완전 실성혔었당께로.
목깐서 막 똥 싸부러갖고 쫓겨나고 그렸어. 막.
시방 그 야그 들응께 심장이 다 벌렁대는구만.
23. 권명주의 집 / 낮
폴리스 라인 앞의 종구와 성복이 쭈그리고 앉아 있다.
성복 아 형님은 제 정신이요?
뱅규 형님 거 안 되겄네.
동네 모지랜 성들헌티 뻘소리나 해쌓고...
종구 이 써글 노무 새끼가. 지가 먼저 떠들어대놓고.
성복 아, 고것은 기양 장난친 거이고.
그런 귀신 씬나락 까먹는 소릴 듣는 사람이 어딨소.
종구 아녀. 생각해봉께 니 말이 맞는 것 가터.
버섯은 말도 안 되는 얘기여.
성복 참. 환장허겄네.
그런데 아까부터 저편에서 이들을 쳐다보는 아가씨(무명無名)가 있었다.
쭈그리고 앉은 그녀의 차림새나 외모가 정신이 나가 보인다.
하얀 치마 위에 헐렁한 야전상의를 입은 모습.
종구 거 뭐 보냐.
무명 .......
종구 보지 말어. 쩔로 가.
무명 (돌멩이를 던진다)
종구 (일어서며) 아, 쩔로 안 가?
성복 냅둬요. 아침부터 저렸어.
종구 저 미친년...
(앉으며) 그서 말인디.
니 동네 피부과 좀 댕겨 봐.
여 안주인이든 박흥국이든 진료기록 있는가.
성복 참... 나는 형님이 이럴 때 증말...
종구 중헌 거여. 이 무식헌 놈아.
두드래기. 두드래기랑 뭔 연관이 있당께.
성복 싫어요. 근무지 이탈 못 허요.
종구 지랄... 형이 소장 되먼 니 팔짠 완전 달라지는 거여.
긍께 허라믄 혀. 이?
24. 어느 피부과 / 낮
순찰차에서 내리는 성복.
간판을 올려다보더니,
한숨을 내쉬며 계단을 오른다.
25. 권명주의 집 / 낮
폴리스 라인 앞에 앉아 핸드폰을 뒤적이는 종구.
‘곡성 피부과’를 검색 중이다.
그러다 저편의 무명을 보면,
그녀는 여전히 종구를 보고 있다.
종구 앗따, 거 참 드럽게 신경 쓰이네.
무명 .......
종구 아가씨. 집이 어데여?
무명 .......
종구 이 동네 살어?
무명이 일어나 다가온다.
종구 머여. 오지 마.
무명 .......
종구 오지 마라고. (그래도 오자) 에에?
무명 아짐니가 다 쥑여 뿌렸어.
종구 .......
무명 저 안에 방에서 다 쥑여 뿟다고.
종구 뭐, 뭔 소리여.
무명 할매가 그대로 냅두먼 아짐니가 죽는대갖고 굿을 헌 거여.
아짐니는 안 헌다 그렸는디. 그래갖고 다 쥑여뿐 거여.
종구 이... 이 집 식구여?
무명 아니여. 나 이 집 식구 아녀.
종구 그... 그먼.
무명 일로 와 봐.
무명이 폴리스 라인을 걷고 안으로 향한다.
종구 거 드가믄...
무명 괜찮애. 일로 와. 일로 오랑께.
겁먹은 종구가 따라 들어간다.
무명이 안방에 서 있다.
무명 요서 다 쥑여 뿐졌어. 할매가 젤 아프게 죽었제.
대들다가 대그빡이 뽀사져부렀거던. 수박맨치로.
종구 지, 직접 본 거여?
무명 하먼. 봤제.
종구 워치케...
무명 (속삭이며) 할매가 그런디 그 왜놈이 귀신이랴.
종구 .......
무명 그 놈이 아짐니 피를 말려 쥑일라켔디야.
종구 왜놈?
무명 이. 그 다리 저는 일본놈.
종구 .......
무명 왜놈 본 적 있어?
종구 (끄덕)
무명 멫 번 봤는디?
종구 한... 두어 번?
무명 조심혀.
할매가 그런디, 그놈이 자꼬 뵈는 것은...
그 놈이 자꼬 찾으가갖고 뵈는 것이랴.
피를 말려 쥑일라고.
순간 핸드폰이 울린다.
보면, ‘오성복’이다.
26. ‘권명주의 집’과 ‘보건 피부과’ 교차 / 낮
종구 (무명에게) 쪼, 쫌만 기둘려. 이?
(나가더니) 너 시방 후딱 와봐.
성복 예?
종구 아 후딱 오라고.
성복 시방 피부과 찾았는디...
종구 목격자 찾았다고. 목격자. 당장에 뛰와. 이?
전화를 끊은 종구가 다시 안으로 들어간다.
그런데 무명이 보이질 않는다.
마당으로 나와 주변을 뒤져도 없다.
의아한 기분이 드는데 등 뒤에서 뭔 소리가 들려온다.
돌아보니, 아무것도 없다.
그럼에도 계속해서 소리가 들려오자,
그것을 쫓아 건물 옆을 지나 뒷마당으로 향하니,
저 구석으로 발가벗은 남자가 웬 짐승을 뜯어먹고 있다.
놀라고 겁에 질린 종구가 뒷걸음을 치자
남자가 종구를 뒤돌아본다.
시뻘건 두 눈알이 소문 속의 일본인이다.
먹이를 본 것마냥 후다닥- 달려드는 일본인.
이를 피해 죽어라 내달리던 종구가
불에 타 내려앉은 기둥에 걸려 자빠진다.
겁에 질려 돌아보니,
시뻘건 눈의 일본인이 코 앞이다.
27. 전종구의 집 / 아침
종구 으아악!
지랄발광을 하며 깨어나는 종구.
가쁘게 숨을 내쉬던 그가 주전자의 물을 들이킨다.
부인이 비닐봉지를 들고 들어온다.
부인 뭔 죄를 지었간디 저럴까이. 하루 이틀도 아니고.
종구 .......
부인 (외투를 벗어 걸며) 어데 안 좋은기여?
종구 아이씨... 자꼬 요상헌 꿈을 꾸네...
(봉지를 보더니) 누가 아퍼?
부인 효진이가 쫌 안 좋네. 학교도 못 가불고.
(시간 경과)
별채에 딸린 효진의 방.
종구가 들어선다.
효진이 앓아 누워있다.
종구 뭔 방이 이르케 차다냐?
부인 밤새 창문을 열어 놨드라고. 보일라 땠어.
아이의 옆에 앉은 종구가 이마를 짚어본다.
종구 아이고. 불댕이구마.
보니, 헛소리까지 중얼거리고 있다.
종구 아, 니는 집구석에서 뭐더고 자빠졌냐. 아가 이 지경인디.
부인 긍께 약 사왔잖여.
종구 아이 확 기양... 얼릉 병원 안 데꼬 가!
순간 천장에서 짐승의 괴성과 함께 후다닥- 움직이는 소리가 들린다.
소리의 크기로 보아 꽤 커다란 놈이다.
놀란 종구가 천장을 올려다 보더니,
종구 (겁에 질려) 뭣이다냐?
부인 .......
28. 곡성 파출소 앞 / 아침
성복이 순찰차를 세차 중이다.
입구에 선 소장이 담배를 태우며 잔소리를 하고 있다.
저 편에서 종구의 오토바이가 다가온다.
소장 아이고, 인자 출근 하셨어요?
오토바이에서 내리는 종구.
성복이 눈치를 본다.
종구 효진이가 몸이 쫌 아파갖고...
소장 인자는 딸내미 핑계까정 대뿌네이.
종구 .......
소장 목격자는 찾었냐?
종구 아, 아뇨.
소장 온 동네구석을 싹 다 뒤집어 놓드만... 그르케 뜨고 잡냐? 이?
승진허고 자퍼?
종구 .......
소장 서장님 귀에까정 드갔어. 니는 거짓깔을 혔어도 문제고,
놓쳤어도 문제여. 시말서 써.
종구 예.
29. 섬진강 변 도로 / 낮
도로 갓길에 주차된 순찰차.
성복과 종구가 반쯤 드러누워 있다.
종구가 지역신문을 읽고 있다.
종구 돌아 불겄네.
성복 긍께 뭐더러 그런 미친년 말을 듣고 그래요.
종구 그것이 아니라 (신문을 던지며) 요거이 돌겄다고. 요거이.
성복이 신문을 보니
‘야생 버섯이 부른 살인’이란 제목의 크지 않은 기사가 보인다.
종구 병원선 뭐려? 거서도 버섯 땜시래?
성복 (읽으며) 즈그들은 잘 모르겄응께 큰 병원 가보라 그랬대요.
종구 글제. 버섯일 리가 있냐.
성복 그럴 수도 있단디.
종구 지랄... (잠시) 니 말여. 병규헌티 들었땀서 나헌티 혀 준 얘기 있제.
성복 고것이 한두 개요.
종구 거, 산중서 깨벗고 고라니 뜯어 묵는 거 말여.
성복 형님. 시방 뭐더는 거요? 이 난리통에?
종구 난링께 이러는 거 아녀.
니 그 냥반 누군지 알제?
30. 건강원 / 낮
허름한 건강원 앞으로 순찰차가 선다.
(시간 경과)
덕기와 마주 앉은 종구와 성복.
덕기 믿기지 않겄지마는, 직접 내 두 눈으로 본 것이여.
(머리를 까며) 여, 여 봐봐. 여거.
종구 (보면)
덕기 스물두 바늘이나 꾸맸당께.
종구 술 자시고 어서 궁글러분 거 아뇨?
덕기 먼 소리여. 내가 이 나이 처묵고 실없는 소리나 지껄여쌀까.
종구 증거 있어라?
덕기 증거? 있제.
덕기가 일어나 냉동고를 연다.
덕기 봐봐. 텅 비었제?
내 그 날 이후로 산은 근처도 안 가부러.
가게도 내놨당께. 그래갖고.
성복 그것이 뭔 증거여.
덕기 앗따. 내가 참말로 봤당께.
짐승맨치로 깨벗고 기어 댕기는 것을.
두 눈깔이 싯뻘게갖고... 봐라. 나 살 돋은 거. 요거. 요거.
종구 고라니도 뜯어묵고?
덕기 그려.
종구 쌩 것을?
덕기 아 긋당께.
성복 하...
종구 (수첩을 꺼내며 한숨) 그 냥반 집이 어데요?
덕기 왜. 가볼라고?
종구 예. 함 만나봐야 쓰겄네.
덕기 가지 말어. 글다 일나.
(정색하며) 내 생각인디. 동네서 자꼬 사람 죽어나가는 거.
그거 고놈이랑 뭔 연관이 있는 거여.
종구 .......
덕기 그 냥반 사람 아녀.
종구 (잠시) 그려도 주소 좀 갈차줘봐요.
덕기 산중에 주소를 으찌 안당가.
종구 대충 어디쯤인디요?
덕기 그것이 말로 설명이 되간디. 쩌어기 저 꼴짜기 속인디.
31. 도로 – 순찰차 안 / 낮
성복 (운전하며) 나잇살은 처묵어갖고 헛소리나 찍찍 해쌓고.
으디냐고 물응께 표정 봤소? 으디 좆 대가리마냥 생겨 갖고.
(종구를 살피더니) 시방 그 표정은 뭐요?
종구 .......
성복 만약에... 형님이 참말로 쩌 얘기를 믿는거믄...
나 형님이랑 안 놀라요. 참말로.
알겄소?
종구 .......
32. 전종구의 집 / 밤
대문 앞에서 장모가 새끼줄을 매달고 있다.
그녀의 등 뒤로 종구의 오토바이가 다가와 선다.
종구 뭐 허세요?
장모 암 것도 아녀.
종구 금줄 아뇨.
장모 이. 동네구석이 하도 흉상시라갖고.
종구 (잠시) 효진인 좀 어떠요?
장모 많이 아퍼.
효진의 방.
종구가 들어와 간병 중인 부인 옆에 앉는다.
이마를 짚으면 열이 불덩이다.
몸을 떨고 있다.
종구 효진아. 아가.
효진이 대답도 못하고 헛소리를 내뱉는다.
종구 병원선 뭐려?
부인 기양 감기란디. 링게루를 맞았는디도 열이 안 떨어지네.
종구가 한숨을 내쉬는데,
천장에서 짐승의 기척이 들려온다.
으르렁대며 쿵쾅거리는 것이 2마리인가 본데 심하다.
(시간 경과)
별채에 사다리를 놓은 종구가 올라가 지붕 밑으로 후레쉬를 비춘다.
틈 사이로 기둥 너머 웅크린 뭔가가 보인다.
소리 뼈 씹는 소리.
종구가 소리를 내도 반응이 없자,
들고 있던 작대기로 위협을 한다.
그러자 놈이 인상을 구기며 돌아보는데 괴상한 몰골이다.
종구 뭐여, 써글.
종구가 작대기를 휘두르자 놈이 피한다.
그러자 놈이 먹고 있었는지, 살점이 파헤쳐진 고양이가 보인다.
종구 아이씨. 이런... 미친 새끼...
종구가 놈을 향해 후레쉬를 비추며 작대기를 휘두른다.
그러자 으르렁거리며 요리조리 피하던 놈이 성이 났는지
갑자기 종구를 향해 달려든다.
종구 으아악!
소리 쿵!
효진의 방에 있던 부인과
부엌에서 일을 보던 장모가 동시에 뛰쳐나온다.
보면, 사다리에서 떨어진 종구가 커다란 짐승을 후레쉬로 때려죽이고 있다.
종구의 얼굴에 긁히고 물렸는지 상처가 나 있고 피가 흐른다.
종구 이런 개새끼가!
놈이 숨을 거두자 종구가 헐떡이며 나자빠진다.
부인 웜메, 뭐여. 이것이.
장모 아이가. 이거이 뭐이당가. 이거이…
겁에 질린 두 여자의 음성에 종구가 후레쉬를 비추면,
다리가 6개가 달린 희한한 형상의 털이 듬성듬성한 짐승이 죽어있다.
난생처음 보는 짐승이다.
그것을 들여다보는 두려운 얼굴의 가족들.
장모가 효진의 방을 바라본다.
33. 건강원 / 낮 / 흐림
INSERT) 먹구름이 잔뜩 낀 하늘.
건강원 앞.
순찰차 밖의 종구를 성복이 말리고 있다.
성복 아, 형님 참말로 이럴꺼요?
종구 조용혀. 닌 보고만 있어.
종구가 문을 열고 들어간다.
종구 안녕하시오.
덕기 또 왔어? 해장부터 먼 일이여?
덕기가 중학생쯤으로 보이는 아들, 손님과 함께 흑염소 3마리를 붙잡고 있다.
3마리 모두 모가지에 빨간 끈을 달고 있다.
종구 가게 내놨담선...
덕기 아니, 갑자기 이것 쫌 다려달라 갖고.
흑염소가 종구를 보며 애처롭게 운다.
종구 조덕기씨. 야생 동식물 보호 및 관리에 관헌 법률 위반 혐의로
(시계 보더니) 공구시 현 시간부로 체포헙니다.
종구가 덕기에게 수갑을 채운다.
덕기 시방 뭐더는겨?
아들 아부지...
(시간 경과)
종구와 성복이 강렬히 저항하는 덕기를 순찰차에 싣는다.
덕기의 아들이 옆에 붙어 난리다.
종구 쩔로 안가? 이? 칵 기양.
아들을 위협한 종구가 얼른 차에 탄다.
종구 출발 혀. 출발.
출발하는 순찰차.
덕기의 아들이 바라보며 운다.
34. 건강원 주변 도로 – 순찰차 안 / 낮 / 흐림
종구가 헐떡거리며 멀어지는 백미러 속의 아들을 본다.
종구 앗따, 어린 놈이 어려서 긍가 한창 심이 좋네.
(옷을 추스르며) 야 차 세워.
차가 서자 종구가 뒷좌석의 덕기를 본다.
종구 아제. 딱 결정하쇼.
덕기 뭐, 뭣을.
종구 유치장 좀 드갔다 벌금 멫 백 내고 면허정지 맞을라요.
아니믄 거 일본놈 집까정만 데따주고 쩌 흑염소 마저 다릴라요.
덕기 .......
종구 대답허요. 얼릉.
덕기 마, 마저... 다려야제...
35. 당산나무 오솔길 – 순찰차 안 / 낮 / 흐림
덜컹거리며 이동하는 순찰차.
덕기 쩌그. 저 세워.
거대한 당산나무 앞에 서는 순찰차.
종구, 성복, 덕기가 내린다.
누군가가 쌓아 놓은 돌탑들.
날이 흐려서인지 음산한 기운.
36. 어느 산속 / 낮 / 흐림 – 비
어둑어둑한 숲 속.
덕기를 선두로 종구와 성복이 이동 중이다.
저 멀리서 미약한 천둥소리가 들려온다.
두 경찰은 힘이 드는지 헐떡이고 있다.
갑자기 덕기의 얼굴이 어두워지더니 걸음을 멈춘다.
종구 왜...
덕기 쩌그여. 쩌가 거그여.
종구 쩌가 집이 어뎄다고.
덕기 아니. 그 사람 봤던 디라고. 쩌, 쩌 봐. 저그.
종구와 성복이 덕기의 손끝이 향한 곳을 본다.
놀라는 그들.
종구 우이씨... 그 말이 참말이었소?
덕기 (억울하다는 얼굴로 보더니) 긍께 내가 진짜라고 계속 안 혔냐!
종구 이런... 씨부럴...
보니, 그곳엔 살점이 뜯겨 부패한 흉측한 몰골의 고라니 사체가 있다.
그 옆으로 배낭과 망태기가 있고,
배낭 앞으론 크기가 작은 짐승의 사체들이 흩어져 있다.
성복 시상에... 이게...
순간 장대 같은 빗줄기가 쏟아져 내리면서
천둥 번개가 치기 시작한다.
모두가 당황해 하는데,
덕기는 불안함이 더욱 크다.
덕기 이, 인자 되았제?
종구 뭣이 되요. 집을 알켜줘야제.
덕기 쩌 깔끄막만 넘으먼 집이여.
딱 그 한 집잉께 나 읎어도 될 꺼여.
(내려가며) 가네이.
종구 (잡으며) 아, 여까정 왔는디 끝장을 봐부러야제라.
덕기 여 놔 이거. 나 가야됭께.
종구 아 으딜 갈락헌디. 자꼬.
덕기 놓라고. 이 오살 놈아!
종구 못 놔!
덕기 놔!
종구 못 놔!
덕기 놓라고!
덕기가 종구를 뿌리치다 미끄러지며 산비탈을 구른다.
돌덩이들에 부딪혔는지 움직임이 없는 덕기.
종구 뭐... 뭐여.
성복 씨벌...
대형 사고를 직감한 둘이 급히 덕기를 향해 뛴다.
종구 괜찮허요?!
그러자 덕기가 몸을 일으킨다.
화가 머리끝까지 난 덕기는 머리가 깨져 피범벅이다.
덕기 이... 이 개겉은 새끼들이...
종구 (손을 뻗으며) 미안허요.
덕기 쩔로 가, 이 개새끼야!
종구 .......
덕기 느그들 두고 봐. 싹 다 모가지 짤라불랑께.
종구 (다시 손 뻗으며) 진짜 지송혀라.
덕기 (뿌리치며) 좆까!
덕기가 몸을 돌려 하산을 하려 한다.
그러자 천둥소리와 함께 사방이 번쩍하더니 덕기의 머리에서 김이 난다.
자신도 놀랬는지 몸을 돌려 종구와 성복을 보는 덕기.
시커멓게 탄 덕기의 희한한 얼굴.
놀란 종구가 뻗고 있던 손을 거둔다.
그러자 비틀거리며 산속을 이리저리 오가는 덕기.
좀비 같다.
넋이 나간 종구와 성복이 바라만 본다.
(시간 경과)
덕기를 업은 성복이 비탈을 구른다.
종구가 달려들어 덕기를 들쳐 업고 내달린다.
37. 곡성 병원 / 밤 / 비
병원 전경.
응급실.
비에 쫄딱 젖은 데다 흙투성이인 종구와 성복이 서 있다.
그 앞으로 응급 치료 중인 덕기와 넋이 나간 덕기처가 보인다.
덕기처 평생 비암이다 뭐다 잡아 처묵으믄 뭣혀.
배락 맞으먼 뒤져불 것을...
(울며) 어찌게 배락을 다 처맞냐고
맞을라고 쫓아댕겨도 못 맞는 것을....
종구 .......
덕기처 (종구를 보며) 그려도 비암이다 뭐다 하도 처묵어갖고
뒤지지는 않은 거랴.
침통한 얼굴의 종구가 고개를 돌리니 덕기의 아들이 노려보고 있다.
고개를 숙이는 종구.
(경찰1) 여그! 여그!
종구가 보니 다급한 얼굴로 뛰어들어온 경찰1이다.
경찰1 여 이백사호 환자! 박흥국이! 얼릉 와요! 얼릉!
간호사가 뛰쳐나가자 소란스러워지는 외부.
뭔가가 짐작됐는지 종구가 슬며시 그들을 쫓는다.
소란을 쫓아 복도를 지나 계단을 오르면,
(경찰1) 뭣이라도 혀 봐요! 아이, 흥국아! 아이! 정신 채려! 야 임마!
병실 문틈으로 다급한 소리가 들려오는데,
얼굴이 하얘진 간호사가 뛰어나와 계단을 내려간다.
(경찰1) 야! 아이!
종구가 다가가 보니,
병상 위의 흥국이 보인다.
산소 호흡기를 쓴 그가 몸을 비틀며 괴로워하고 있다.
순간 종구와 눈이 마주치는 흥국.
시뻘겋게 충혈된 눈이 터질 듯 보인다.
겁에 질린 종구가 덜덜 떠는데,
어느 틈엔가 성복이 다가와 함께 흥국을 본다.
그러자 흥국의 몸이 말도 안 되는 각도로 꺾이기 시작한다.
뼈가 끊어지고 관절이 틀어지는 소리가 들려온다.
고통에 일그러진 흥국의 입에서 피가 쏟아져 나온다.
산소호흡기에 고여 넘치는 핏물.
보고 있던 성복이 달려들어 경찰1과 함께 흥국을 붙잡는다.
의사와 간호사들이 달려 들어간다.
참혹한 광경에 낯빛이 파래진 종구의 얼굴.
38. 작부의 술집 / 밤 / 비
골목길에 위치한 대포 집.
좁은 내부에 사람들이 북적거린다.
가디건 차림의 촌스런 작부가 방 안에서 요염을 떨고 있다.
그 밖으로 드럼통 테이블에
얼굴이 파랗게 질린 종구와 성복이 마주 앉아 있다.
말없이 소주만 들이킨다.
종구 (술 마시고) 이것이 도대체가...
뭣이 워치케 돌아가는 것이냐...
성복 (잠시) 내일 다시 가봅시다.
그 놈 집에...
종구 .......
성복 분명히 뭣이 있어. 분명히...
성복의 멍한 시선은 작부에게로 향해 있다.
종구가 보니,
웃고 떠드는 작부가 목덜미를 긁적이고 있다.
벌겋게 부어 오른 피부와 그 위의 물집들.
종구의 얼굴이 굳어져 간다.
그런 둘을 바라보고 있는 ‘마네키네코’.
선반 위에 놓인 일본 고양이 상像이다.
39. 전종구의 집 / 밤 / 비
불 꺼진 집안.
안방에서 나온 파자마 차림의 종구가 마루에 걸터앉는다.
담배를 태우려는지 라이터를 켜는데 말을 듣지 않는다.
연신 라이터를 켜대는 종구.
순간 저편 효진의 방에서 신음 소리가 들려온다.
흐느낌인 것 같기도 하다.
효진의 방.
종구가 들어가자 가위에 눌린 아이가 보인다.
온몸이 경직된 아이가 울다가, 신음을 뱉기를 반복하고 있다.
종구 효진아!
종구가 효진을 흔들며 볼을 때린다.
종구 효진아. 효진아!
효진 (괴로워하며) 아... 아부지...
종구 효진아!
순간 기침을 토해내는 효진.
그제야 가위가 풀렸는지 효진이 종구를 끌어안으며 엉엉 운다.
그런 효진을 안고 등을 토닥이는 종구.
효진 아부지... 어치케 좀 혀줘...
종구 왜, 왜...
효진 누가 자꼬 문을 뚜들고...
자꼬 들올라코 혀...
종구 누, 누가...
효진이 크게 운다.
종구 누가 들올락 허냥께.
효진 어쩐 아제가... 어쩐 아제가 자꼬... 들올라코 혀...
종구의 얼굴에 불안이 가득하다.
장모의 방.
불 꺼진 방에 앉아 위 소리를 듣고 있는 장모의 모습.
누군가의 시선에서 본 종구 부녀의 모습.
40. 전종구의 집 / 아침
효진의 방에서 눈을 뜨는 종구.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들려온다.
보면, 효진이 없다.
종구 효진아...
안방.
종구가 달려들어와 급히 문을 연다.
종구 효진이...
보면, 효진은 부인과 장모와 함께 식사 중이다.
종구 뭐여. 쌩쌩혀?
효진 (웃으며) 안녕. 아부지.
멍해진 종구가 보니,
효진의 식욕이 대단해 보인다.
특히 생선에 집중하고 있다.
해체된 생선만 4마리다.
이상하단 얼굴로 부인과 장모를 보니,
눈을 마주한 그들 역시 그러한 눈치다.
(시간 경과)
대문 밖으로 종구를 끌고 나오는 장모.
종구 아니, 아가 생선을 다 묵어뿔고...
장모 자가 암만 봐도 이상혀.
자 방에서 나온 숭악시런 짐승도 글코.
종구 .......
장모 어젯밤에 자랑 허는 얘기 다 들었네.
종구 .......
장모 옆집 할매헌티 잘 허는 무당 있으먼 알아봐도라 혔어.
함 만나 볼텡께 알고 있으라고.
종구 .......
장모 이?
종구 알았어라.
41. 국도변 휴게소 / 아침
화물차가 지나치는 휴게소 전경.
종구가 탄 오토바이가 들어선다.
성복 인사 혀. 우리 조카요.
오토바이에서 내리는 종구가 보면,
성복의 옆으로 비리비리한 젊은 청년이 인사한다.
점퍼 사이로 ‘로만 칼라’가 보인다.
종구 머여. 신부님이여?
성복 아적 신부는 아니고. 부제여. 부제. 신부 밑에...
생각혀 봉께. 그 냥반을 만나도 말이 안 통할깜시.
종구 (청년에게) 일본말 좀 혀?
이삼 예. 쫌 헙니다. 쫌.
성복 야가 어려서 일본에 쫌 살아갖고.
종구 (성복에게) 근디 니 모가지에 건 뭐냐?
성복이 십자가가 달린 목걸이를 감춘다.
종구 여러가지 헌다. 니 이름이 머여?
이삼 양이삼이요.
종구 이름이 양이삼이여?
이삼 .......
종구 참... 가자.
42. 국도 – 순찰차 안 / 아침
달리는 순찰차 안.
긴장감이 감돈다.
43. 일본인의 집 / 아침
산속에 위치한 농가.
폐가였던 곳을 손 본 듯.
정리가 되지 않고 어수선한데
일본인이 설치한 것들까지 더해져 음산하다.
돌덩이로 올린 탑, 깃발, 우물, 한자가 적힌 나무 비석,
돌덩이로 만든 제단, 곳곳의 촛불들...
일반적이지 않다.
종구 일행이 능선에 서서 집을 내려다본다.
헐떡대는 그들에게 집 앞에 묶인 시커먼 개가 짖어대고 있다.
성복 계시오? 계시오?
집 앞에 도착한 종구 일행.
엄청나게 큰 외눈 개가 쇠줄을 철렁이며 짖어댄다.
아무도 없는 듯 반응이 없다.
주변을 둘러보던 종구가 가운데 방문을 열고 들어간다.
이불이 대충 개져 있고, 식사를 마친 밥상이 보인다.
벽에는 옷들이 몇 개 걸려 있고,
박스들과 책들이 쌓여 있다.
그 중 보자기에 싸인 함을 열어보는 종구.
섬뜩한 가부키 가면이 나타나자 화들짝 놀란다.
종구 (집어 던지며) 에이 씨...
그리고는 책을 펼쳐보면,
중동 말인지, 서 아시아 말인지 알 수 없는 활자가 보인다.
중간중간 삽화가 있는데 섹스하는 남녀의 모습이다.
종구 변태 새끼...
(성복에게) 니는 여그 좀 뒤적여 봐.
성복 에.
그 방을 나온 종구가 끝 방으로 향한다.
자물쇠로 잠겨있다.
안을 들여다 보니 잘 보이진 않지만 일렁이는 불빛이 보인다.
(성복) 니도 일로 와 봐봐. 이거 먼 말인가.
(이삼) 삼춘 이거 불법이여.
(성복) 알어.
(이삼) 근디 왜 이려. 허지 말어.
(성복) 아, 허기 싫으믄 나가있어.
(이삼) 삼춘.
(성복) 앗따, 나가 있으라고.
종구가 주변을 둘러보더니 돌멩이를 집어오는데,
방에서 나온 이삼이 종구를 본다.
종구 뭣을 그르케 봐쌓냐. 사람 무안허게.
쩌어 뒤에 가갖고 망이나 봐.
불만스런 얼굴의 이삼이 마루를 내려와 주변을 둘러본다.
개가 더 크게 날뛰어댄다.
소리 깡-
종구가 자물쇠를 돌멩이로 내리친다.
걸쇠가 떨어져 나가자 끼이익- 방문을 여는 종구.
동시에 벽에 걸린 옷가지들 너머로 다락문을 발견하는 성복.
옷들을 치우고 다락문 틈을 보니 불빛이 보인다.
그러자 조심스레 다락문을 끼이익- 여는 성복.
그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동시에 종구의 얼굴도 일그러진다.
그가 보고 있는 방의 내부를 보면,
일종의 제단이다.
제단의 위론 오래된 노인 남녀의 사진이 나란히 걸려 있고,
그 밑으론 굵은 말뚝 하나가 둥그런 상 위에 놓여 있다.
말뚝엔 허옇고 뻘건 것들이 잔뜩 발라져 있고,
그것을 중심으로 흙으로 빚은 원뿔 모형들이 세워져 있다.
핏자국이 잔뜩인데 닭 털과 쌀알들이 널려있다.
그 밑으로 네모난 상엔 향이 타고 있는데
그 옆으론 커다란 생선 한 마리가,
다른 쪽으론 시커먼 닭 한 마리가 접시에 올라가 있다.
부패되어 구더기가 잔뜩이다.
방바닥엔 시커멓게 굳은 핏자국과
나무조각들, 닭 털들, 쌀알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다.
새끼줄이 천장에 거미줄처럼 얽혀있고,
그 사이마다 부적들이 꽂혀 있다.
벽엔 알 수 없는 문자가 적힌 한지가 덕지덕지 붙어 있다.
이 모든 것들을 굵직한 양초들이 밝혀주고 있다.
종구 씨벌...
성복 씨벌...
성복 역시 욕을 내뱉고 있는데,
그가 보고 있는 다락 속을 보면,
누군가의 사진들이 빽빽하게 붙어 있다.
대부분이 망원 렌즈를 이용해 찍은 사진들인데,
산 사람의 사진과 죽은 사람의 사진이 뒤섞여 있다.
개중엔 권명주의 사진도 있는데,
강가로 추정되는 곳에서 밝게 웃으며 찍힌 사진과
시커멓게 그을려 발악하는 사진과
사망한 뒤 경찰들에 둘러싸인 사진이다.
다른 편엔 흥국의 사진도 있다.
시장으로 추정되는 곳에서 장기를 두는 사진과
조씨의 집에서 경찰들에 둘러싸인 사진이다.
이러한 사진들은 바닥에 놓인 양초들로 밝혀져 있고,
그 옆으론 수많은 소품들이 널려있다.
누군가의 신발 혹은 브래지어 등이 그것이다.
그렇게 둘이 각자의 것을 넋을 잃고 바라보는데
(이삼) 으아악!
종구가 급히 나가보니, 이삼이 개에게 바짓단을 물려 발버둥 치고 있다.
달려가 이삼을 잡아 끄는 종구.
우두둑- 바짓단이 찢어지며 이삼이 개에게서 빠져 나온다.
종구 씨벌... 괜찮으냐?
이삼 (헐떡이며) 에...
종구 아나... 아 니는 뭣헌다고 저길 가갖고...
순간 더욱 미쳐 날뛰던 개로 인해 사슬 끝에 박아둔 말뚝이 뽑혀져 나간다.
아가리를 벌리고 달려드는 개.
종구와 이삼이 비명도 못 지르고 쳐다만 보는데,
코 앞에서 멈춰서는 개.
쇠말뚝이 장애물에 걸렸다.
종구가 보니 쇠말뚝이 빠지는 것은 시간문제다.
종구 튀... 튀어!
순간 죽어라 방을 향해 내달리는 종구와 이삼.
동시에 쇠말뚝이 빠져나오며 개가 달려든다.
몸을 날린 종구가 방으로 다이빙을 하자 개도 뛰어든다.
종구의 몸이 방바닥에 닿는 순간 이삼이 방문을 닫으며 개를 밀친다.
운 좋게 화를 면한 종구가 일어나 방문을 닫고 버틴다.
그러나 그래 봤자 한옥의 방문이다.
창호지가 뜯기고 문 살이 부러져 나간다.
밥상과 이불, 박스를 가져다 문을 막는 종구와 이삼.
그러다 뒤를 보니 성복은 멍하니 다락 속을 보고 있다.
종구 오성복이 너 뭣 혀!
뭔가에 홀린 듯 성복이 그들을 빤히 쳐다본다.
종구 (성복에게 물건을 던지며) 뭣 허냐고! 이 씨벌 놈아!
성복 .......
종구 저 미친 새끼...
그런데 날뛰던 개가 갑자기 잠잠해진다.
헐떡대던 모두가 의아해하는데,
(일본인) 개를 어르는 소리.
(소리) 주인을 보고 반기는 개 소리.
놀란 종구가 문 사이로 내다보면,
일본인이 사슬을 쥔 채 방을 바라보고 있다.
종구 씨벌...
모두의 눈이 불안에 떨린다.
일본인이 손 망치를 들어 쇠말뚝을 박더니 방을 향해 다가온다.
난감한 종구 일행이 여전히 버티고 있는데,
순간 문이 밖으로 열린다.
손 망치를 든 일본인이 종구 일행을 하나씩 내려다본다.
입을 벌려보지만 말이 나오질 않는 종구.
그렇게 모두가 난감해하는데,
일본인이 들어와 내부를 훑어본다.
난장판.
이삼 (日) 죄... 죄송합니다...
ご、ごめんなさい…
(고… 고멘나사이…)
일본인이 이삼을 잠시 보더니,
문이 열린 다락 속을 바라본다.
성복의 손이 부들부들 떨린다.
그런데 다락을 바라보던 일본인이 아무 반응 없이 문을 닫는다.
잠시 생각을 하더니 종구 일행을 내려다보는 일본인.
아무런 표정도 없고 말도 없어 더욱 침이 마르는 종구 일행.
마치 그들의 머릿속을 보는 듯한 일본인의 얼굴.
소리 천둥 소리.
44. 국도 – 순찰차 안 / 낮 / 비
비에 쫄딱 젖은 채 흥분한 종구 일행.
종구가 운전 중이다.
종구 씨벌... 씨벌... 니미...
(룸미러 보며) 니는 괜찮냐?
이삼 예...
종구 (성복을 보더니) 넌 왜 그려. 아까부터.
성복 .......
종구 개헌티 물렸냐?
성복 .......
종구 아 말 좀 혀. 써글 놈아.
성복 그 새끼... 그 새끼가 범인이여...
종구 머여. 이 새끼. 너 왜 그냐. 무섭게...
정신 채래야.
성복 한둘이 아녀.
산 사람일 쩍에 사진을 찍어놓고... 그 사람이 미쳐 죽으믄...
찾으가 또 사진을 찍은 거여...
종구 뭐래냐. 이 새끼. 말 겉잖은 소리나 계속 해쌓고.
성복 그 새끼가 범인이여...
종구 (이삼을 보더니) 인자 고만혀라. 알았응께.
성복 확실혀... 그 새끼...
종구 아 고만허라고. 이따가 허자. 이따가.
성복 그 새끼... 산 사람 물건을 가져다 놓고... 걸로 뭔 짓을 혔어...
종구 니 도대체 뭣을 본겨?
성복 .......
종구 뭣을 봤는디.
성복 .......
종구 아, 뭣을 봤냐고!
성복 (종구를 보자)
종구 왜... 아 왜 그려.
성복 (울먹이자)
종구 야 성복아. 이 새끼야.
성복 형님... 우리 효진이... 효진이 어쩌냐...
성복이 품 안에서 실내화 한 짝을 꺼내 보인다.
45. 전종구의 집 / 낮 / 비
종구가 대문을 밀치고 들어온다.
화장실에서 나온 장모가 종구를 보고 놀란다.
장모 아 왜 비를 맞고...
종구가 효진의 방문을 여는데,
효진이 없다.
종구 효진이 어딨어라.
장모 아, 안방에...
안방.
종구가 문을 열면,
효진이 이불 위에 엎드려 TV를 보고 있다.
효진 일찍 왔네?
종구 (잠시) 효진아.
효진 (보더니) 왜 그려. 무섭게. 괜찮애?
종구 이.
효진 (TV 보며) 옷 쫌 갈아입지 그려.
종구 효진아.
효진 (보지도 않고) 왜.
종구 니 혹시... 실내화 잊어부렀냐?
효진 아니.
종구 뭐라 그럴랑 거 아닝께. 얘기혀 봐.
효진이 고개를 가로젓자,
종구가 아이의 옆에 앉더니 품속에서 실내화 한 짝을 꺼내 보인다.
종구 그럼 이건 머여?
효진 (슬쩍 보더니) 내꺼 아닌디.
종구 이거 니 글씨 아녀?
안에 쓰인 ‘전효진’이란 글씨.
효진 (보지도 않고) 내꺼 아니라고.
종구 (잠시) 니... 동네에 일본 사람 사는 거 알제?
부인 아, 물을 뚝뚝 흘림서 뭐더는 거여. 시방.
부인이 방으로 들어온다.
종구 대답혀 봐. 니 그 사람 알제?
효진 (끄덕)
종구 니 그 아제 만난 적 있제?
효진 .......
종구 대답혀 보랑께.
부인 아 무섭게 왜 그려?
종구 나가있어.
부인 .......
종구 내 쪼께 심각헝께 나가 있으라고.
분위기를 느낀 부인이 말없이 나간다.
종구 아부지 경찰이여. 그짓말허먼 다 알어.
효진의 표정이 굳는다.
종구 니 그 사람 만난 적 있제?
효진 (끄덕)
종구 말혀 봐.
효진 (잠시 눈알을 굴리더니) 뭣을.
종구 싹 다. 어드서 만났고. 뭣을 혔는가.
효진 내가 왜 말혀야 되는디?
종구 중요헌 문젱께.
효진 뭣이 중헌디.
종구 니 증말 이럴껴?
효진 (그제야 얼굴을 보며) 뭣이 중허냐고.
아이의 정색한 얼굴에 종구가 흠칫한다.
효진 도대체가 뭣이 중허냐고. 뭣이.
뭣이! 그케 중허냐고.
종구 .........
효진 뭣이 중헌지도 모름서...
(일어나 나가며) 뭘 자꼬 캐묻고 지랄이여, 지랄이...
놀란 종구가 멍하니 있다 문 밖의 부인을 쳐다본다.
46. 전종구의 집 / 밤
비가 그친 밤 하늘.
구름 속의 달.
불 꺼진 전경.
효진의 방.
방문이 열리며 종구가 들어온다.
잠든 효진.
종구가 플래시를 켜고 효진의 가방과 책상을 뒤진다.
공책을 보니,
초반의 일반적인 내용들이 뒤로 갈수록 심각해진다.
글씨체가 불안정해지며 낙서가 늘어나더니,
후반부는 아예 시커멓다.
기괴한 그림들, 문자들, 일본인을 떠올리게 하는 요소들.
심각해진 종구가 효진을 돌아본다.
곤히 잠든 효진.
종구가 다가가 이불을 젖히더니 잠옷을 걷어 올린다.
아이의 허벅지로 붉은 발진이 드러난다.
더 걷어 올리자 팬티 위로 수포들이 드러난다.
종구의 숨결이 거칠어지며 손끝이 떨려 온다.
효진 시방 머더는겨?
종구가 깜짝 놀라지만 내색하지 않는다.
종구 어? 아. 자, 자는지 알았구마...
효진 머더냐고.
종구 .......
효진 오밤중에 딸내미 치마 걷어 올리고 머더냐고.
종구 .......
효진 (앉으며) 왜 말을 안 혀?
종구 .......
효진 (들이대며) 왜 말을 않냐고, 이 씨벌놈아.
말을 허랑께!
귀가 찢어질 듯 소리치는 효진.
(시간 경과)
불 켜진 집안.
부인과 장모가 발광하는 아이를 달래고 있다.
그제야 소리를 멈춘 효진이 종구를 무섭게 노려본다.
종구가 얼빠진 얼굴로 효진을 바라보고 있다.
효진 (씩씩대며) 쳐다보지 마라.
부인 니 자꼬 그럴껴? 미안허대잖어. 아부지가.
장모 효진아. 할매랑 자자. 할매랑.
장모가 종구에게 나가라 손짓한다.
효진 싹 다 쥑여뿔껴. 느그들...
부인 이 가시내가...
장모 그런 말 허먼 안 되제. 으른헌티.
장모가 또다시 손짓하자,
한숨을 내쉬며 나가는 종구.
대문 앞.
쭈그리고 앉은 종구가 담배를 피운다.
눈물을 글썽이고 있다.
장모가 나온다.
장모 아까 무당헌티 댕겨왔네.
종구 .......
장모 집 안에 귀신이 들었디야.
아모려도 효진이헌티 들와분 것 같단다.
종구 .......
장모 냅뒀다간 줄줄이 송장 치울 거이라고...
종구 .......
장모 겁나게 영헌 사람이라 칠백은 줘얀단디 오백으로 깎았네.
시간 없당께 얼릉 결정 혀.
종구 예.
장모 그려.
장모가 들어간다.
효진이 대문 밖의 종구를 보며 여전히 씩씩거리고 있다.
멍하던 종구의 얼굴이 무섭게 변해간다.
소리 성당의 종소리.
47. 곡성 성당 / 새벽
파란 새벽.
성당 안에 매달린 줄을 당겨 종을 울리는 이삼.
잠이 덜 깬 얼굴.
갑자기 입구가 열리며 종구가 들어선다.
화들짝 놀라는 이삼.
종구 (화난 얼굴로) 니 왜 내 전화 안 받냐?
이삼 .......
종구 존 말헐 때 얼릉 나와라. 갈 데 있응께.
종구가 나간다.
소리 육중한 성당 문이 닫히는 소리.
48. 어느 산속 / 아침
화난 얼굴로 산속을 오르는 종구와
불만과 불안이 섞인 얼굴로 그 뒤를 따르는 이삼.
하늘을 보니,
이상하리만치 많은 새들이 떼지어 날고 있다.
누군가의 시선이 그들을 보고 있다.
49. 일본인의 집 / 아침
화면 가득한 일본인의 얼굴.
오도독 소리를 내며 뭔가를 씹고 있다.
마주 선 종구가 일본인의 여권을 보더니
핸드폰으로 찍는다.
적개심이 가득하다.
개가 무섭게 짖어댄다.
종구 (다 적자) 집 안 좀 봐야 쓰겄닥해.
이삼 (日) 집 속을... 볼까요?
家の中を… 見ますか?
(이에노 나카오… 미마스까?)
일본인이 고개를 끄덕이자 종구가 방으로 들어간다.
밥상을 보아하니 식사 중이었나 보다.
발톱까지 있는 허연 닭 발 조림.
혐오스럽다는 얼굴의 종구가 다락으로 향하더니 일본인을 본다.
무표정한 일본인.
그러자 비밀을 공개하듯 다락문을 여는 종구.
흔적만 살짝 남았을 뿐 아무것도 없다.
당황한 종구가 일본인을 노려보더니,
종구 여깄던 것들 어따 치웠는가 물어봐.
이삼 (日) 여기 있었던... 것들... 어디에...
ここにあった… もの… どこ…
(코코니 앗따… 모노… 도코…)
일본인 (日) (잠시) 뭘.
なんのことだ。
(난노 꼬도다.)
이삼 뭣을 말허냐는디요?
종구 우리가 쩐에 보고 간 것들이락해.
이삼 (日) 우리가... 전에... 보고 간 것... 이요.
わたしたち… 前に… みた… です。
(와타시따치… 마에니… 미타… 데스.)
일본인 (日) 사진?
写真?
(샤신?)
이삼 사진이냐고 묻는디요?
종구 (잠시) 그려. 사진허고... 딴 것들.
이삼 (日) 예. 사진하고. 다른 것들.
はい、写真と他のもの。
(하이, 샤신또 호까노모노.)
일본인 (日) 태웠어.
燃やした。
(모야시타.)
이삼 예?
일본인 (日) 태웠다고.
燃やしたと言った。
(모야시타도 잇따.)
이삼 (잠시 일본인을 보더니) 다 태워부렀대요.
종구 (잠시) 워따.
이삼 (日) 어디에... 요?
どこ… ですか?
(도코… 데스까?)
일본인 (日) 부엌에.
台所で。
(다이도코로데.)
이삼 부엌이란디요.
종구 .......
부엌에 들어서는 종구.
아궁이를 보면, 잿더미뿐이다.
부지깽이로 뒤적여도 연기만 날릴 뿐.
종구 이 씨벌 새끼...
종구가 나가 일본인에게로 향한다.
종구 니 여 뭣허러 왔어.
이삼 (日) 무엇을 하러 이곳에 왔어요?
何しにここに来ましたか?
(나니시니 코코니 키마시타까?)
일본인 ..........
종구 다시 물어봐.
이삼 (日) 무엇을 하러 이곳에 왔어요?
なぜここに来ましたか?
(나제 코코니 키마시타까?)
일본인 (日) (잠시) 여행.
旅行。
(료코오.)
이삼 여행.
종구 끄직고 가 처넣기 전에 똑바로 말허락해.
이삼 (日) 제대로 말해요.
正直に言ってください。
(쇼지키니 잇데쿠다사이.)
일본인이 전종구를 빤히 쳐다본다.
갈등하는 것이 분명하다.
일본인 (日) 말해도 믿지 못 할 것이다.
言っても信じないだろう。
(잇데모 신지나이다로오.)
이삼 자기가 말혀도 안 믿을 거란 디요.
종구 어여 말허라 혀. 다 알고 왔다고.
이삼 (日) 우리는 다 알아요. 제대로 말해요.
わたしたち、全部知っています。正直に言ってください。
(와타시타찌 젠부 싯데마스. 쇼지키니 잇데쿠다사이.)
이삼의 말에 조금 더 갈등하는 일본인.
일본인 (日) 여행.
旅行。
(료코오.)
종구 (한숨을 내쉬더니 이삼에게) 니 인자부터 내 말 똑바로 전해라.
토씨 한 티기도 안 틀리게.
이삼 예.
종구 야 이 씨벌놈아.
이삼 .......
종구 이 니미 개 좆겉은 씨벌 느자구 없는 새끼야.
이삼 저...
종구 여행을 왔단 새끼가 집구석에 죽은 사람 사진을 붙여놔야?
이삼 (日) 여행... 죽은 사람...
旅行… 死んだ人…
(료코오… 신다 히토…)
종구 (실내화를 꺼내 보이며) 이것이 왜 느그 집에 있냐?
이삼 (日) 왜 이것이...
なぜこれが…
(나제 고레가…)
종구 너 머여. 뭣허는 새끼여?
이삼 (日) 당신은 누구...
あなた誰…
(아니타 다레…)
종구 니가 여 동네서 뭔 짓거릴 허는지 다 알어.
(제단 방을 가리키며) 쩌 짝 방도 다 봤고!
내 딸헌티도! 뭔 짓거릴 허는지 다 알고 있어.
이삼 .......
종구 나는 니가... 기양 허던 짓거릴 다 때려치우고.
조용히 이 동넬 떠나줬으먼 좋겄다. 참말로.
이삼 (日) 떠나세요. 조용히.
出ていって。静かに。
(데떼잇데. 시즈카니.)
종구 여근 곡성이여. 내 나와바리.
괜히 쓰잘데없는 짓거리허다 개죽음 당허지 말고. 떠나.
이삼 (日) 안 떠나면... 죽습니다.
出ていかないと… 死にます。
(데떼이카나이또… 시니마스.)
종구의 기나긴 말이 끝났음에도 일본인의 반응은 같다.
종구 사람이 이만치 말혔으믄 대답을 허던가.
고개라도 까딱혀. 이 씨벌넘아.
이삼 (日) 대답하세요.
返事してください。
(헨지 시떼쿠다사이.)
일본인 .......
종구 니는... 내 말이 말 겉지가 않은 갑다.
종구가 저편에 놓인 곡괭이를 집더니,
옆방으로 향한다.
문짝을 박살내고 들어가 제단을 뒤집어엎는 종구.
그러자 미쳐 날뛰는 개.
팽팽해진 쇠사슬이 또다시 아슬아슬하다.
아니나 다를까 쇠말뚝이 뽑히며 방을 향해 달려드는 개.
그 바람에 놀라 자빠지는 이삼.
이삼 삼춘!
방 안에서 인간과 개의 괴성과 비명이 섞여 들려 나온다.
이삼이 급히 향하니,
피범벅이 된 종구가 심하게 헐떡이며
바닥에 널브러진 개를 내려다보고 있다.
피를 흘리며 신음하는 개의 모습.
이삼 사... 삼춘...
자신도 놀랐는지 이삼을 쳐다보는 종구.
잔뜩 흥분한 얼굴로 일본인에게로 향한다.
피 묻은 곡괭이를 일본인 앞에 내던지며,
종구 인자는 믿겄냐?
이삼 .......
종구 (손가락을 펴 보이며) 정확허게 사흘 줄껴. 사흘.
사흘 안에 짐 챙겨 떠나. 안 그먼 저 개새끼 꼴 날텡께.
이삼 .......
종구 뭣허냐. 통역 안 허고.
이삼 .......
종구 아, 통역허라고!
혼란스런 얼굴의 이삼이 떨고 있다.
50. 국도 – 종구의 낡은 차량 안 / 낮
무거운 침묵이 흐르는 차 안.
굳은 얼굴의 종구와 이삼 모두 말이 없다.
51. 일본인의 집 / 낮
일본인이 마루에 앉아 죽은 개를 바라본다.
무표정한 그의 입이 실룩거린다.
웃는 것인지 슬퍼하는 것인지 알 길이 없다.
주변 나무 위로 까마귀가 하나 둘씩 모여든다.
52. 보건 피부과 / 낮
삐딱한 얼굴의 효진.
머리가 하얗게 샌 늙은 의사의 당황스런 얼굴.
의사가 상의를 걷어 올린 효진의 환부를 보고 있다.
그 옆에 선 부인의 얼굴이 불안하다.
의사가 불안한 얼굴로 부인을 보더니,
의사 은제부터 이런겨?
(시간 경과)
효진은 밖에서 대기 중이다.
여기저기를 긁적이며 데스크의 간호사를 멍하니 쳐다보고 있다.
눈이 마주친 간호사가 웃음을 보여도 효진의 얼굴은 그대로이다.
민망한지 도로 업무를 보는 간호사.
효진 걸레 겉은 년...
그 중얼거림을 들었는지 간호사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때마침 진료실에서 나오는 부인.
의사와 무슨 얘길 나눴는지 당혹스런 얼굴로 효진을 바라본다.
53. 전종구의 집 / 밤
집 앞.
종구와 부인이 낡은 승용차 안에서 대화 중이다.
무슨 얘기를 들었는지 종구의 얼굴이 혼란스럽다.
종구 그래갖고.
부인 똑같디야. 증상이. 그 사람들이랑.
종구 아니. 이유가 있을 거 아니냐고.
아 몸에 그런 것이 생겼으먼.
부인 모르겄다잖여.
종구 .......
부인 지난달에 생리를 시작혀갖고 근가 물어봤는디...
고거랑은 상관이 없디야.
종구 아가 생리를 혀?
부인 이...
혼란스런 종구의 얼굴.
54. 일본인의 집 / 밤
여전히 죽은 개를 바라보는 일본인.
개는 수많은 까마귀들에게 덮여 먹이가 되고 있다.
그 모습을 보며 중얼거리는 일본인.
혼잣말인가 싶었는데 듣다 보니 주문 같다.
하늘을 보면, 먹구름 사이의 달이 음산하다.
(부인) 비명 소리.
55. 전종구의 집 / 아침
안방.
찢어지는 비명 소리에 잠에서 깨는 종구.
땀을 뻘뻘 흘리며 한참을 헐떡인다.
(장모) (비명을 지르며) 뭐여! 언 놈 새끼가!
(부인) 울음소리.
계속되는 소란에 정신을 차리는 종구가 일어서려 한다.
그런데 몸의 반쪽이 말을 듣지 않는지,
힘없이 고꾸라진다.
바닥에 얼굴을 처박고 헐떡이는 종구.
일어나려 하는데 또다시 자빠진다.
대문 앞.
모가지에 빨간 끈이 달린 흑염소 한 마리가 매달려 있다.
바닥에 주저앉은 부인은 울고 있고,
겁먹은 장모는 떨고 있다.
장모 (부인에게) 저, 전서방 불러라. 어여!
일어나 안방으로 향하는 부인.
문을 열자 버둥대는 종구가 보인다.
부인 여보!!
56. 한의원 / 낮
종구의 몸을 뚫는 대침.
돌아간 입, 떨리는 손.
초로의 한의사가 여러 종류의 침을 온몸에 꽂고 있다.
(시간경과)
온몸에 꽂힌 수많은 침.
고슴도치가 되어 생각에 잠긴 종구.
장모와 부인이 그 모습을 보며 앉아 있다.
장모 인자 시작된 것이여. 맘 단단히 묵어야 되네.
종구 .......
장모 그저께 말혔던 거. 낼 허기로 혔네.
종구 (부인에게) 효진이는 어딨어.
장모 딴소리 말고. 그러기로 혔응께 돈 준비허라고.
종구 아 워딨냐고.
부인 아가 집에 있지. 워딨어.
장모 옆에 집 할매헌티 좀 봐도라 그렸어. 신경 쓰지 말어.
종구 아니 아를 두고 여길 다 오믄…
(몸을 일으키며) 시방 제 정신들인겨?!
57. 전종구의 집 / 낮
차가 서자 급히 뛰쳐나오는 종구.
지팡이를 짚었지만 불편한 몸은 자꾸 넘어진다.
먼저 들어간 장모가 효진의 방문을 여니 효진은 없다.
장모 야가... 효진아. 할매.
안방으로 들어가는 장모.
(장모) 아이가! 효진아! 할매! 할매!
놀란 종구가 뒤늦게 가보면,
가위를 들고 부들부들 떠는 효진과
그것에 수 차례 찔린 할머니가 신음하는 것이 보인다.
종구가 중심을 잃고 주저앉는다.
겁에 질려 무섭게 떨어대는 효진의 모습.
뒤늦게 달려온 부인이 이 광경을 보고는 혼절한다.
(시간 경과)
집 앞으로 순찰차와 구급차량이 보인다.
또 다른 순찰차가 서며 성복이 내린다.
집 안으로 들어가 보면,
들 것에 할머니를 실은 구급대원이 안방을 나서고 있다.
신음을 내는 소리로 보아 치명상은 입지 않은 듯.
마루에 앉은 부인은 넋이 나가 있고,
장모는 경찰의 진술을 받는 효진을 달래고 있다.
효진은 울기만 할 뿐이다.
경찰2 아가 음청 놀랐을 거인디 잘 달래줘요.
쩌 어르신 가족들이랑은 얘기 잘 됐응께. 걱정 놓시고.
종구 그려. 잘 좀 부탁 혀.
종구가 성복과 눈이 마주 친다.
(시간 경과)
집 앞.
다른 차량들이 떠나고 한 대의 순찰차만 남았다.
그 옆에 쭈그리고 앉은 종구와 성복.
성복 그 새끼가 해꼬지허는 것이 분명허요.
멀쩡허던 아가...
똑같잖소. 앞전에 사건들이랑.
종구 .......
성복 거 댕겨오고 나서... 몸이 막 애려불드만,
갑자기 열이 나고... 헛것이 보입디다.
벽 속에서 웬 남자새끼 낯짝이 튀 나온디
산 사람은 아닌 거 같고...
종구 .......
성복 워치케든 뭐라도 혀야요.
안 그랬다간... 똑같이 당해불 것이요.
종구 .......
(시간 경과)
안방.
종구가 방구석에 기대앉은 효진을 바라보고 있다.
장모의 품에 안겨 끅끅 거리는 효진.
종구 왜 그런 거여?
효진 .......
종구 왜 그렸는가 말이라도 혀 줘야제...
효진 (다시 울먹이며) 아부지...
종구 (울컥)
효진 (울며) 할매가... 시뻘건 귀신매냥... 이불 속에서...
종구 .......
효진 나 좀... 어찌케 혀 줘...
나 미친 것 가터...
울컥한 종구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종구 (안으며) 효진아...
효진 아부지...
종구 우리 딸... 아부지가 다 해결할껴.
아부지 경찰인 거 알제?
아부지가 해결할껴...
그렇게 서로를 끌어안고 흐느끼는 부녀.
그들을 바라보며 흐느끼는 부인.
58. 산길 국도 – 일광의 차 안 / 아침
산봉우리 너머로 떠오르는 태양.
웅장한 산맥 사이로 뱀처럼 굽은 국도.
그곳을 달리는 하얀 무쏘 차량.
선글라스를 쓴 덥수룩한 수염의 남자(일광)가 운전 중이다.
그 뒤를 따르는 일광남녀들과 악사樂士들이 탄 낡은 봉고.
59. 전종구의 집 / 낮
집 앞으로 하얀 무쏘와 봉고가 들어선다.
차에서 내린 일광이 집과 주변을 둘러보며 선글라스를 벗는다.
일광 워메... 살벌헌 거...
효진의 방.
일광이 벽에 기대앉은 효진을 빤히 쳐다본다.
일광을 노려보기도 하고, 시선을 피하기도 하며 불안해하는 효진.
그러자 일광이 책상 밑을 내려다본다.
아무 말없이 마당으로 나가는 일광.
휘파람을 불며 집 안 구석구석을 바라보는 것이 예사롭지 않다.
종구와 장모가 그의 뒤를 쫓고,
일광의 일행들은 대문에 서서 일광을 바라보고 있다.
일광 (장독을 턱으로 가리키며) 쩌 독아지는 뭣이여.
장모 머... 으떤 거...
일광 아, 다라이 밑에 쩌거.
장모 기양... 장 담가논...
일광 일로 가꼬 와 봐.
종구 .......
일광 뭣혀? 귀 처먹었어?
종구가 절룩이며 달려가 장독을 들고 오면,
일광 비껴.
종구가 물러나자 돌덩이를 집어 든 일광이 장독을 깬다.
간장과 함께 커다란 까마귀 3마리가 쏟아져 나온다.
종구와 장모가 놀란 얼굴로 “오메”, “뭣이여” 저마다 한마디씩을 내뱉는다.
일광 허...
일광이 일그러진 종구의 얼굴을 한참 바라보더니,
일광 그 다리가 여럿 딸렸다는 짐승은 어따 묻었어?
종구 (담 너머를 가리키며) 쩌 뒤에따가...
일광 맴생이도?
종구 예.
일광 파 갖고 와.
(시간 경과)
삽 자루를 든 종구가 부대 자루를 마당에 내려놓는다.
일광 붓어.
종구가 부으면,
흙더미와 함께 2마리의 사체가 쏟아진다.
그것을 들여다보는 일광.
주변을 훑어보더니,
일광 씨벌... 겁나 징상시런 놈이구마.
(일행들에게) 인자 판 깝시다.
(시간 경과)
마당에 차려진 굿판.
악사들의 북과 징, 꽹과리 소리로 요란하다.
일광이 그 박자를 타며 접신接神 중이다.
그 앞으로 효진이 앉아 있고,
그 뒤로는 가족들이 앉아 있다.
접신이 됐는지 일광이 중얼거리며 소나무 가지를 쌓아놓은 곳으로 향한다.
그곳에 불을 붙이는 일광.
이를 본 일행들이 까마귀와 짐승들을 건네면,
일광이 그것들을 삼지창에 꽂아 모닥불 위에 내동댕이친다.
그리고는 일행이 전해준 부적들을 던져 넣어 태운다.
그렇게 짐승들을 처치하자 일광은 효진을 향해 선다.
무구를 들고 펄쩍펄쩍 뛰더니
하얀 종이가 달린 대나무 가지로 효진을 때리며 소금을 뿌린다.
그러자 불안한 얼굴의 효진이 몸을 떨기 시작한다.
이를 본 일광이 더욱 크게 주문을 외우고 행위를 한다.
옆에 앉은 장모가 보니,
효진의 두 눈이 뒤집어지며 거품을 물고 있다.
장모 아... 아가...
순간 자지러지는 효진.
간질 환자마냥 경련을 일으키며 발작을 시작한다.
종구 효진아. 효진아!
종구와 부인이 달려들자,
막아서는 일광남1, 2.
종구와 부인이 불안한 얼굴로 멈추자 일광남1은 그들을 지키고,
일광남2가 효진의 몸을 누른다.
그러자 일광녀가 효진의 몸 위로 오방기를 덮고 소금을 뿌린다.
일광의 굿은 더욱 격렬해지고,
효진의 발작 역시 심해져 간다.
이를 보던 종구가 못 참겠는지 일행들을 물리치더니
아이를 안아 들고 달린다.
그제야 짜증이 난다는 듯 굿을 멈추는 일광.
일광 아따 씨벌... 어이. 어이!
종구 (멈추고 보면)
일광 육갑떨지 말고 안에따 옮겨.
종구 .......
일광 괜찮응께 방 안에 뉩히라고!
(시간 경과)
효진의 방.
일광이 주문을 외며 효진의 이마와 목을 누르고 있다.
효진을 보면, 언제 그랬냐는 듯 평온히 잠들어 있다.
숨을 돌리며 놀라워하는 모두.
일광이 그들을 등 뒤에 둔 채 입을 연다.
일광 자네 메칠 전에 만나믄 안 되는 것을 만난 적 있제?
종구 (잠시) 뭔 말씀인지...
일광 (종구를 보며) 누굴 찾으가 건드린 적 읎냐고.
종구 (낯빛이 바뀌면)
일광 나가 인제까 본 악질 중에서 갑 중에 갑이여.
자네가 고것을 건드러뿌렸어.
종구 .......
일광 백날 굿 해봤자 암 씨알데기 읎어.
장모 아이가. 그먼 워치케...
일광 (종구에게) 누구여.
종구 .......
일광 누굴 건드려붓냐고.
종구 거...
장모 아, 말씀 올려. 얼릉.
종구 그... 일본 사람...
일광 하... 그럴지 알았다.
종구 .......
일광 그 냥반 사람 아녀.
종구 .......
일광 그 냥반 귀신이여.
60. 어느 산속 마을 / 낮
띄엄띄엄 위치한 가옥들.
좁은 도로가 꼬불꼬불 정상으로 향해 있는 그림 같은 전경.
난데없이 나타난 순찰차들이 우르르 올라간다.
61. 박춘배의 집 / 낮
경찰들과 구급대원들로 북새통을 이룬 상황.
마당엔 굿을 치렀었는지 제사상이 차려져 있고,
북이니 징이니 하는 악기와 무구巫具가 널려 있다.
오래 방치된 모습들.
그 옆으로 구급대원이 로프를 타고 우물을 내려가고 있다.
“내려! 내려!”, “찬찬히 내려!”
들여다보면,
저 밑으로 수면에 드러난 3구의 시신들이 보인다.
얼핏 보기에도 무녀복을 입은 무당들이다.
62. 산길 국도 - 일광의 차 안 / 낮
종구와 일광이 이동 중이다.
일광 여 동네에 일어나분 일들... 죄다 그 놈 짓이여.
기양 냅둬다간 자네 딸내미뿐만 아니라
동네에 두발 달린 것들은 죄다 씨가 말라불 것이여.
종구 그러믄...
일광 워치케든 그 놈을 없애 부러야 되야.
내 쫓아 불든가. 쥑여 불든가.
종구 .......
63. 박춘배의 집 / 낮
우물에서 건져지는 시신들.
무당 복장을 한 여성 시신 2구.
평범한 중년 여성의 시신 1구다.
참혹하게 살해된 흔적들.
일그러진 얼굴로 이를 바라보는 서장.
(소장) 쩌기 서장님.
서장이 보면,
중년 남녀의 사진을 건네는 소장.
소장 이 냥반이 박춘배라고. 농사짓는 여 집 주인이요.
서장이 보니, 사진 속의 여성은 시신 중의 한 명이다.
서장 지 마누라까정 쥑인겨?
소장 그런 것 같소.
서장 니미 개 좆겉은...
소장 이 집에 트럭이 한 대 있단디...
시방 차도 안 뵈고. 사람도 안 뵈고.
서장 진직에 도망간 겨.
(형사1에게) 어이. 어이. 거 일로 와봐.
형사1이 다가오는데,
그 너머로 구경꾼들 중에 일본인의 모습이 보인다.
슬며시 카메라를 들더니 셔터를 누르는 일본인.
소리 촤아악- 쌀알이 쏟아지는 소리들.
64. 일광의 집 / 낮
법당.
상 위에 쏟아지는 쌀알들.
이를 살핀 일광이 셈을 하더니 마주 앉은 종구에게,
일광 내일 밤 유시에 거 귀신놈헌티 살을 날릴 거여.
오늘 가갖고 집 안에 부정헌 것들일랑 죄다 끄집어 내놔.
남의 것. 줏어온 것. 못 보던 것.
봐갖고 원래 있던 것이 아니믄 싹 다 내놔.
종구 예.
일광 글고 비렁내, 누렁내 나는 것들도 싸그리 치아놔.
마누라 달거리 허거든 어데 가 있으라 허고.
종구 예.
일광 돈은 있어?
종구 어, 얼매나...
일광 한 천은 들지 않겄어?
종구 (잠시) 예. 마련허겄습니다.
일광 그려.
나가 내일 헐라는 것은 말여.
기양 굿이 아녀.
종구 .......
일광 살을 날리는 것이여. 살.
허벌나게 위험헌 일잉께 부정 타는 짓거린 절대 말어.
오입은 당연헌 것이고. 처묵는 거, 마시는 것도 개려.
안 글믄 역살 맞어붕께.
종구 예.
일광 되아써. 가봐.
종구 예.
일광이 일어나 옷을 갈아입는다.
머뭇거리던 종구가 일어나 나가려다 말고,
종구 저... 질문 좀 혀도...
일광 (바지를 벗다 말고) 뭣을.
종구 그 일본 놈 말요.
그 놈이 귀신이라 허셨는디...
일광 근디.
종구 어찌 산 사람이 귀신이란 거인지... 이해가 잘...
65. 어느 숲 속 오솔길 / 낮
깊은 숲 속을 걷는 일본인.
바로 옆의 고라니 2마리가 도망가지도 않고 풀을 뜯어먹는다.
어느 지점에 다다르자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급히 비탈을 내려가는 일본인.
그제야 일본인이 사라진 지점을 보는 고라니들.
겁을 먹었는지 달아난다.
66. 일광의 집 / 낮
러닝셔츠 차림의 일광이 추리닝 바지를 입고 끈을 묶으며,
일광 그 냥반 산 사람 아녀. 죽은 지 한참 된 사람이여.
종구 .......
일광 (마루로 나가며) 원래는 사람이었겄제. 근디 지금은 아녀.
종구 (쫓아 나가며) 귀신이 들러 붙어갖고 그런 것인가?
일광 (담배 태우며) 첨엔 그랬겄제.
종구 .......
일광 숨 쉬고, 말허고, 움직인닥혀서 다 살아있는 것이 아녀.
고것에 속아 죽어나간 사람들이 부지기수여.
그 놈은 말여.
이대로 냅뒀다간 곡성 땅에 씨를 말릴 허주 악질에.
사령이여. 사령.
67. 어느 숲 속의 오솔길 / 낮
아무도 모를 법한 오솔길을 걷는 일본인.
저 멀리 세워진 파란색의 낡은 트럭.
일본인이 운전석 안을 빤히 들여다본다.
해골처럼 삐쩍 마른 남자가 입을 벌리고 기대 누워 있는데,
아무래도 죽은 것 같다.
주변을 둘러보더니 차 문을 여는 일본인.
소리 파리 소리.
수많은 파리들이 쏟아져 나온다.
꿈쩍도 않고 남자를 바라보는 일본인.
야상을 입은 남자의 가슴팍에 ‘박춘배’라 쓰여 있다.
미세한 호흡을 내쉬고 있다.
68. 일광의 집 / 낮
종구 그러믄...
일광 .......
종구 왜... 왜 하필이먼 우리...
일광 딸내미냐고?
종구 예.
일광 그 어린 것이 무신 죄를 졌다고. 이?
종구 예.
일광 (잠시) 자네는 낚시를 헐 쩍에 뭣이 걸려 나올지 알고 허나?
종구 (고개를 가로저으면)
일광 그 놈은 낚시를 허는 거여.
뭣이 딸려 나올진 지도 몰랐겄제.
그 놈은 기양 미끼를 던져분 것이고.
자네 딸내미는 고것을 물어뿐 것이여.
고것이 다여.
69. 전종구의 집 / 밤
파리해진 얼굴의 효진.
피부병이 얼굴의 여기저기에 돋아나 있고
바짝 마른 입술로 힘겹게 숨 쉬고 있다.
근심 어린 얼굴로 효진을 내려다보는 종구.
70. 곡성 시장 / 아침
저 멀리 솟아오르는 태양.
곡성과 시장의 전경.
일본인이 닭 집 앞에서 닭을 고른다.
닭 상인 요거?
일본인 (고개를 가로저으며 까만 닭을 손가락질하면)
닭 상인 요거?
일본인 예. 예.
닭 상인 아, 꺼먼 놈을 찾네. 꺼먼 거. 이?
보면 골라놓은 닭이 죄다 까만 닭들이다.
닭 상인이 가격을 손짓해 가며 얘기하자,
꼬깃한 지폐와 동전을 꺼내 계산하는 일본인.
뒤통수가 따끔거리는지 뒤를 보면,
주변의 상인들이 숙덕거리며 그를 보고 있다.
소금을 뿌리는 상인도 보인다.
71. 시내버스 안 – 곡성 경찰서 앞 / 아침
끈에 묶은 닭들을 바닥에 내려놓고 앉은 일본인.
띄엄띄엄 앉은 승객들이 닭 때문인지 뭔지 호기심 반 경계심 반으로 쳐다본다.
그 시선 때문인지 뭔지 고개를 돌려 창 밖을 내다보는 일본인.
경찰서 앞으로 닭장차가 보이고,
수많은 전경들과 기자들로 난리인 상황이 보인다.
그것을 보는 무표정한 일본인의 얼굴.
72. 전종구의 집 / 낮
창고에서 들고 나온 궤짝을 마당으로 집어 던지는 종구.
마당에 쌓인 집기들이 작은 산을 이루고 있다.
먼지투성이의 종구와 장모가 비지땀을 닦아낸다.
일광 이것이 다여?
종구 그런 것 같으요.
일광 쩌것은 뭔디?
보니, 부인 것인지 장모 것인지 널려있는 속옷이다.
장모 (치우며) 앗따... 요것을 까묵었네.
일광 꼼꼼허게 더 뒤져.
그렇게 말한 일광이 효진의 방으로 향한다.
효진의 방.
일광남1,2,3과 일광녀가 창문을 판자로 막고,
나뭇가지를 방바닥에 널고,
온 방에 부적을 붙이고 있다.
어느새 마련된 작은 제단 위로 촛불과 향이 타 들어가고 있다.
방 안에 들어선 일광이 효진을 내려다본다.
부인의 옆에 누운 효진은 여전히 파리한 얼굴.
73. 어느 산속 계곡 / 낮
발가벗은 일본인이 폭포 밑에서 묵상 중이다.
계곡물의 한기에 덜덜 떠는 일본인.
그 옆 바위 위론 돌덩이들로 마련된 제단이 있고,
촛불과 향이 타 들어가고 있다.
누군가의 시선으로 보이는 전경.
74. 일본인의 집 / 해질 무렵
촛불 빛에 일렁이는 노인 남녀의 사진 밑으로 파손된 제단이 보인다.
그 위에 놓인 박춘배의 사진.
생전의 웃는 모습과 트럭 속에서 죽은 이마냥 드러누운 모습의 사진이다.
그 앞으로, 일본인이 복장을 갖추고 있다.
일본의 승의僧衣인지 뭔지 낯선 느낌의 복장이다.
고개를 돌려 문 밖을 보면, 산 너머로 지고 있는 태양.
75. 전종구의 집 / 해질 무렵
기이한 분위기가 된 효진의 방.
일광 인자 해 떨어지믄 거사를 치를 것이요.
맴 단단히 자시고.
부인 예...
일광 뭔 일이 인나도 현혹되지 마시오. 이?
거 다 귀신이 쑈허는 것잉께.
부인 .......
일광이 밖으로 나가면,
일행들이 의식을 준비하고 있다.
제사상, 허수아비 형상의 기괴한 목각인형, 수십 개의 촛불, 염소 한 마리...
종구와 장모가 긴장한 모습으로 서있다.
일광이 저 너머로 저무는 태양을 바라본다.
76. ‘일광과 일본인의 의식’ 시퀀스 / 밤
76-1. 일본인의 집
눈을 감고 제단 앞에 정좌한 일본인.
제단을 비추던 한줄기 빛이 사라지자 눈을 뜨더니
불이 붙은 작대기를 호마護摩를 향해 던진다.
호마에 불이 붙자 북을 치기 시작하는 일본인.
주문을 읊는데 일본어가 아닌 것 같다.
희한한 언어로 중얼대던 그의 목소리가 점차 커지며,
북소리도 빨라지고 커진다.
천장부터 이어진 금줄에 거꾸로 매달린 닭들이 퍼덕인다.
76-2. 전종구의 집 마당
집 안 가득한 북소리.
활활 타오르는 커다란 불 더미들.
2개의 불 더미는 집기들이고, 1개는 상여다.
그 사이에 정좌를 하고 앉은 일광이 주문을 외우고 있다.
그의 의식을 무릎 꿇고 지켜보는 종구와 장모.
담벼락 너머로 동네 사람 몇몇이 구경 중인데,
일광남1이 살벌한 인상으로 그들을 쫓는다.
76-3. 효진의 방
거칠게 숨을 몰아 쉬는 효진.
불안한 얼굴의 부인.
76-4. 일본인의 집
더욱 격렬하게 주문을 외고, 북을 치는 일본인.
그의 몸이 요동을 치기 시작하자
그의 몸에 매달린 종들이 울려댄다.
퍼덕이는 닭들.
촛불에 일렁이는 박춘배의 사진.
76-5. 어느 숲 속의 오솔길
트럭을 둘러싼 촛불들.
향이 피워진 내부.
운전석의 박춘배.
76-6. 전종구의 집 마당
더욱 격렬해지는 북소리.
땀에 범벅이 된 일광의 몸이 부들부들 떨리더니 접신을 마친다.
두 눈을 뜨자 광기 어린 얼굴이 드러난다.
자리에서 일어나 휘파람을 불며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일광.
기이한 소리를 내며 머리를 풀어 헤치더니 저고리를 벗어 던진다.
짐승 같은 그를 바라보는 종구와 나머지들.
76-7. 효진의 방
땀에 범벅이 되어 헐떡이는 효진.
효진 어... 엄마... 쩌... 쩌거 허지 마락해...
부인 참어야 되야...
효진 지발... 허지 마락해...
울먹이는 부인의 난감한 얼굴.
76-8. 전종구의 집 마당
분위기를 더욱 고조시키는 악사들.
일광이 리듬을 타다 손짓하자,
일행들이 하얀 닭과 칼을 건넨다.
그러자 능숙한 솜씨로 날개와 머리를 잡고는 모가지를 잘라내는 일광.
머리가 없음에도 퍼덕이는 닭을 다라이에 던지더니,
주변을 돌다 일행들에게 손짓하면,
또다시 하얀 닭을 건네주는 일행들.
기둥에 매달린 염소가 비명을 내지른다.
76-9. 일본인의 집
시커먼 닭들이 크게 난리를 처대고 있다.
정좌한 일본인이 널뛰듯 뛰어오른다.
문 밖의 나무들이 난데없는 바람에 휘청거리고,
호마를 태운 불길이 치솟는다.
2장의 사진 중 죽은 듯 보이는 박춘배의 사진이 동그랗게 말려간다.
76-10. 어느 숲 속의 오솔길
갑자기 불어온 바람에 흔들리는 촛불들.
박춘배의 호흡이 점차 커지며 눈꺼풀이 떨려온다
76-11. 전종구의 집 마당
땀과 피에 범벅이 된 일광.
죽은 닭들이 담긴 다라이에 얼굴을 파묻더니 피를 머금는다.
그러자 일행들이 무구들을 건네면,
그 무구들에 피를 뿜고 칼춤을 추는 일광.
그러다 갑자기 효진의 방을 향해 던진다.
땅바닥에 떨어진 무구는 효진의 방을 향하고,
또 다른 하나는 그 옆 마루에 꽂힌다.
그것들을 바라보는 일광.
76-12. 효진의 방
효진 지발... 지발 고만...
부인 효진아...
효진 고만 혀... 고만... (고함) 고만 허라고!
흥분한 효진이 비명을 지르며 몸부림을 친다.
부인이 아이를 붙잡으려 했지만
감당할 수 없는 힘이다.
겁에 질린 부인이 문을 열며,
76-13. 전종구의 집 마당
부인 여보... 여보!
순간 부인을 보게 된 종구가 달려 들어간다.
76-14. 효진의 방
날뛰는 효진을 부여잡는 종구.
효진의 격렬한 발작을 어찌할 도리가 없다.
76-15. 전종구의 집 마당
커다란 언월도를 뽑아 드는 일광.
제단 앞에서 칼춤을 춘다.
그러다 제단의 옆, 땅바닥에 박힌 거대한 목각인형의 다리를 내려찍는다.
다리가 부러져 나가며 불길 속으로 나자빠지는 목각인형.
INSERT) 미친 듯 발악해대는 효진.
일행들이 불길에서 목각인형을 끌고 나오더니,
언월도를 내던진 일광에게 무쇠 정과 돌덩이를 건넨다.
부적을 싸맨 후 끈으로 묶은 정과 돌덩이다.
일광이 그것들을 들고 목각인형의 왼쪽 가슴에 겨눈다.
기이한 소리를 내며 정을 박아 넣는 일광.
INSERT) 미친 듯 발악해대는 효진.
정이 박혀 들어가자, 또 다른 정을 건네는 일행.
그것을 받아 든 일광이 오른쪽 가슴에 또다시 박아 넣는다.
76-16. 일본인의 집
무수히 많은 닭 털이 날리는 제단.
고개를 숙인 채 잠잠한 일본인.
일그러진 얼굴로 눈을 감고 호흡을 고르는 모습이 몸에 이상이 온 듯.
진정이 됐는지 다시 북을 치고 주문을 외려 하는데,
INSERT) 무쇠 정을 박아 넣는 일광.
더 큰 통증이 왔는지 북채를 놓치는 일본인.
가슴을 부여잡는다.
시뻘건 얼굴로 버티던 그가 쓰러진다.
호흡 곤란이 왔는지 껄떡이는 그가
온 힘을 다해 피범벅이 된 방바닥을 기어가기 시작한다.
INSERT) 무쇠 정을 박아 넣는 일광.
강한 통증을 느끼며 멈추는 일본인.
진정을 할 새도 없이 다시 기어간다.
방바닥에 널린 닭들의 사체와
그것들의 피와 털을 쓸어내며 방을 나서는 일본인.
76-17. 전종구의 집 마당
마지막 남은 정을 쥐는 일광.
목각인형의 몸은 여기저기가 쪼개진 상태.
그것의 이마에 정을 겨누더니 박아 넣는 일광.
빠각- 쪼개지는 목각인형의 머리.
INSERT) 미친 듯 발악해대는 효진.
그러자 일광이 일어나 상 위에 놓인 칼을 쥔다.
또 다른 일행은 묶여진 염소를 부여잡는다.
염소를 향해 다가가는 일광.
76-18. 효진의 방
극한의 지경에 다다른 효진의 모습.
더 이상 견디지 못하겠는지,
부인 그만 허락해... (애원하듯) 지발... 그만 허락해...
땀에 범벅이 된 종구는 어찌할 줄 모르겠다는 얼굴.
순간 아이가 발작을 멈추더니,
거품을 물며 온몸을 뻣뻣하게 편다.
그리고는 -흥국이 그랬던 것처럼- 관절들을 기이하게 꺾어댄다.
이러한 행동이 자신의 의지가 아닌 듯 겁을 먹는 효진.
효진 엄마... 엄마...
놀란 종구가 숨을 헐떡이며 효진을 보더니 겁에 질린다.
종구 허... 허믄 안돼... (밖에 대고) 허믄 안돼.
76-19. 전종구의 집 마당
북소리에 묻혀 종구의 소리가 들릴 리 없다.
염소의 목을 따려 드는 일광.
소리 쾅- 문이 젖혀지며 부딪히는 소리.
종구 (나오며) 허지 마라고!
종구를 잠시 보던 일광이 다시 염소의 목에 칼을 댄다.
종구 허지 마라고, 이 씨벌놈들아!
종구가 달려가 촛대와 제단을 무너트리고,
북을 걷어차며 난동을 부린다.
당황해 하는 장모와 일행들.
모든 소리가 멈춰지고, 그제야 의식을 멈추는 일광.
종구 허지 마... 나가!
흥분한 일광이 무서운 얼굴로 종구를 노려본다.
77. 일본인의 집 / 밤
옆방 문턱에 죽은 이 마냥 엎드린 일본인.
갑자기 엄청난 양의 숨을 토해낸다.
겁에 질린 얼굴로 기어 들어가 이불을 뒤집어쓰는 일본인.
오한이 심한지 가쁜 호흡을 고르며 덜덜 떤다.
문 밖을 보는 그의 시선.
숲 속에 뭔가가 있는 듯싶다.
나무 사이에 웅크린 무명의 실루엣.
78. 읍내 도로 - 전종구의 차 안 / 밤
울먹이는 종구가 빠르게 차량을 몬다.
뒷좌석엔 효진과 부인이 타고 있다.
고통스러워하는 효진의 흉측한 모습.
79. 전종구의 집 / 밤
난장판이 된 굿판.
어이가 없다는 얼굴로 일행을 둘러보는 일광.
죽다 살아난 염소가 울고 있다.
80. 곡성 병원 / 밤
80-1. 응급실
응급조치를 마쳤는지 적막이 흐르는 내부.
온몸을 뒤튼 채 잠이 든 효진의 일그러진 얼굴.
넋이 나간 부인이 멍하니 효진을 바라보다,
부인 야... 전종구.
종구 (보면)
부인 너 인자 어쩔꺼여...
종구 .......
부인 너... 니 딸 살려야 된다. 꼭... 이?
종구를 보며 눈물을 흘리는 부인.
할 말이 없는 종구의 얼굴이 달아오르는데,
(의사) 저. 효진이 아버님.
종구 (뒤돌아보면)
의사 잠시만.
80-2. 병원 밖 흡연구역 주차장
의사 경찰이시라고 들었는데...
종구 예.
의사 그럼 박흥국씨라고 아시겠네요.
종구 .......
의사 동일한 상황입니다.
아무 문제도 없어요.
종구 .......
의사 사실... 의사가 할 얘긴 아닌데...
솔직하게... 주변에 용한 무당을 찾아보시는 게 어떨지...
(말씀을 드려보고 싶네요.
제가 의사 생활 하면서 이런 경우를 몇 번 봤는데...)
한숨을 내쉬며 괴로워하는 종구.
그의 눈에 차에서 내리는 장모와 일광이 보인다.
종구를 못 봤는지 장모가 급히 입구로 향하면,
차 앞에 서서 종구를 노려보는 일광.
(시간 경과)
일광의 차 안에 앉은 종구와 일광.
일광 나가 그르케 말혔는디. 왜 그렸는가.
허벌나게 위험허다 혔지.
종구 (한숨)
일광 자네 딸. 자네 땜시 역살 맞은 거여.
안 죽은 것이 다행인 줄 알어.
종구 (한숨)
일광 얼릉 날 잡아갖고 딸내미 살 쳐내고,
다시 그 놈헌티 살을 날려야 혀.
돈도 돈이지마는 시간이 읎어.
종구 (삐딱한 얼굴)
일광 뭐여. 그 태도가.
종구 생각 쫌 혀 봐야겄소.
일광 .......
종구 자꼬 나 땜시 일을 망쳤다허는디.
솔찍허게... 굿을 헐 때마다 아가 저리 되잖소.
일광 허... 그것이 뭔 개소리여.
긍께. 딸내미 저르케 되분 것이 나 때문이다?
종구 (한참을 보더니) 일이 일어난 순서를 생각해 보쇼.
뭣이 먼저인가. 나 때문인지. 도사님 때문인지.
일광 .......
종구 연락드릴텡께. 이만 드가시오.
차에서 내리는 종구.
일광 이런 버러지 겉은 새끼가...
종구 (보면)
일광 살려달라 애걸헐 땐 은제고.
인자 와갖고 나헌티 덤탱이를 씌워?
종구 너 그 쌧바닥 조심혀라.
짓이겨갖고 거름으로 써불기 전에.
일광 허... 니 분명 후회헐 것이다. 명심혀라.
종구 고만 떠들어쌓고. 가라.
차 문을 닫고 입구로 향하는 종구.
난감한 그의 눈에 저 멀리 십자가가 보인다.
멈춰 서서 십자가를 빤히 쳐다보는 종구.
차 속의 일광이 그런 종구를 노려보고 있다.
80-3. 응급실
효진을 본 이삼의 얼어붙은 얼굴.
그 옆의 넋이 나간 부인을 보더니,
이삼 으... 은제부터...
종구 .......
이삼 그, 그날부터 이르케 된 것이요?
종구 (끄덕)
이삼 시, 신부님헌티 말씀 드려 보께요.
종구 시방. 시방 당장...
81. 곡성 성당 사저 / 밤
자다가 깼는지 파자마 차림의 신부가 종구와 마주 앉아 있다.
당황한 얼굴로 대머리를 긁적이더니,
신부 시방... 허신 말씀이 진심이오?
종구 예. 지발... 살려주십시오.
난감한 얼굴로 이삼을 보는 신부.
잠시 고개를 숙이고 생각을 하더니,
신부 그... 그 말을 무당헌티 들었다 허셨는디...
그 사람들 시각에서 보자믄...
귀신은 죽은 사람의 영혼 아뇨.
종구 .......
신부 근디 그 사람은 살았잖소.
종구 .......
신부 지도 멫 번을 그 사람에 관헌 얘기를 들었는디.
유명헌 대학 교수라는 소문도 들었고. 무시무시헌 소문도 들었소.
스님이란 소문도 들었고.
근디. 그것들은 기양 소문일 뿐 아니요? 어찌 걸 믿고...
종구 아닙니다. 신부님. 절대 아닙니다.
신부 계속 확신을 허시네요.
종구 예.
신부 (잠시) 직접 보셨소?
종구 .......
신부 직접 보도 않고 어뜨케 확신을 허십니까?
종구 .......
신부 병원에 도로 가셔갖고... 으사를 믿고 따님을 맽기세요.
교회에서 해 드릴 일은 없습니다.
종구의 얼굴이 붉어진다.
사저 앞.
종구와 이삼이 서 있다.
이삼 내일 또 말씀 드려 보께요.
종구 .......
이삼 진정허고 드가셔라.
종구 니 나랑 그 새끼헌티 좀 가보자.
이삼 예?
종구 그 새끼가 귀신인지 아닌지.
내 눈깔로 직접 봐야 쓰겄다.
이삼 .......
종구 그 새끼가 귀신이믄... 내 손에 안 죽겄제.
82. 일본인의 집 / 새벽
동이 트기 직전의 파란 하늘과 능선.
이불을 잔뜩 덮은 채 잠들어있던 일본인이 깨어난다.
신음을 내며 몸을 일으킨 그가 문 밖을 바라본다.
83. 어느 숲 속 / 새벽
사복을 입은 일본인이 가방을 멘 채 이동 중이다.
잠시 쉬는 모습으로 보아 상태가 안 좋은 듯.
84. 어느 산속 계곡 / 아침
촛불과 향에 불을 붙이는 일본인.
잠시 기도를 올린 그가 옷가지를 벗어놓고는 폭포로 향한다.
그리고는 그 밑에 앉아 묵상한다.
일본인을 바라보는 누군가의 시선.
눈을 감은 채 덜덜 떨던 일본인이 번쩍 눈을 뜬다.
저편 수풀을 바라보면,
후다닥 피하는 누군가의 시선.
일본인이 그곳을 뚫어져라 보니,
바위와 수풀 사이로 나뭇가지가 흔들리고 있다.
그러자 폭포를 걸어 나오는 일본인.
발가벗은 그가 흔들리는 나뭇가지를 향해 가다 멈춘다.
그리고는 살벌한 눈빛으로 노려본다.
(시점 전환)
나무와 바위 사이에 숨어 일본인을 바라보는 무명.
잔뜩 긴장한 얼굴로 새어 나오는 호흡을 줄이려 애쓴다.
그러자 다시 폭포로 향하는 일본인.
이를 본 무명이 안도를 하며 바위에 기대 숨을 돌린다.
그리고는 다시 몸을 돌려 일본인을 훔쳐보려 하는데,
일본인은 바위 위를 네발로 달려 오르며 코 앞에 당도해 있다.
크게 놀라며 뒤돌아 비탈을 기어오르는 무명.
순간 무명의 발목을 잡아채는 일본인.
끌려 내려가던 무명이 돌덩이를 들어 일본인의 얼굴을 후려치더니,
다른 발로 얼굴을 밀어 찬다.
밑으로 나뒹구는 일본인과 무명의 신발 한 짝.
그 새를 틈 탄 무명이 죽어라 비탈을 기어오른다.
머리가 깨진 일본인이 그 뒤를 쫓는다.
좁아지는 간격.
그러자 무명은 손에 잡히는 흉기가 될 법한 것들을 뒤로 내던지기 시작한다.
그것에 맞고 피하고를 반복하며 비탈을 기어오르는 일본인.
85. 어느 산속 / 아침
몽둥이인지 지팡이인지를 짚고 절룩이는 종구와 이삼이 산을 오르고 있다.
이른 아침인지라 음습해 보이는 전경.
난데없이 새 한 마리가 튀어나오자
선두에 섰던 이삼이 놀라 자빠진다.
숨을 헐떡이며 지켜보는 종구.
이삼 오줌 쫌 누께요.
종구 지렸냐.
이삼 .......
이삼이 낭떠러지 앞으로 가 오줌을 눈다.
그런데 저 밑의 수풀들이 흔들리더니,
그 흔들림이 이삼을 향해 다가온다.
놀란 이삼의 눈이 동그래지는데,
갑자기 수풀을 헤치고 모습을 드러내는 일본인.
피범벅이 된 채 네발로 기어오르는 발가벗은 모습이다.
이삼 으아악!
이삼이 또 다시 나자빠지자
고개를 돌려 바라보는 종구.
순간 비탈을 다 기어 오른 일본인이 몸을 일으켜 세운다.
그들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두리번거리는 일본인.
얼어붙은 종구.
피하려 발버둥 치던 이삼이 공포를 못 참고 도망치다
나무 뿌린지 돌 뿌린지에 걸려 나뒹군다.
그 꼴을 보던 일본인이 헐떡이며 종구를 본다.
돌에 맞아 그런지 빨갛게 충혈된 한쪽 눈.
겁에 질려 덜덜 떠는 종구가 지팡이를 겨누며 뒷걸음질 친다.
일본인 (日) 여자 못 봤나? 흰옷 입은 젊은 여자.
女を見なかったか? 白い服を着た若い女だ。
(온나오 미나캇다까? 시로이 후쿠오 기따 온나다.)
종구 너... 너 뭐여... 니 정체가 뭐여...
종구의 말을 못 알아듣겠는지 일본인이 저편의 숲으로 멀어진다.
비탈을 기어오르는 일본인의 모습.
사시나무처럼 떨던 종구가 주저앉아 숨을 몰아 쉰다.
몸을 숨긴 채 이 광경을 지켜보는 무명.
86. 국도 – 전종구의 승용차 안 / 아침
이삼 (호들갑) 뭐요. 이거. 도대체 뭐냐고.
종구 씨벌... 죄다 사실이여...
이삼 시상에. 이건 말도 안 되야...
인자 어쩌죠? 워치케...
(전화 꺼내며) 신부님.... 신부님 헌티...
종구 씨벌 가만 쫌 있어 봐야.
종구가 어디론가 전화를 건다.
종구 성복이. 성복이. (상대가 받자) 니 시방 어데여.
(끊어 버리자) 뭐여. 이 새끼...
이삼 워쩔라 그러요.
종구 (다시 걸며) 워쩌긴. 죽여 부러야제.
87. 오성복의 집 / 아침
커튼을 쳐 어두컴컴한 방 안.
벽 한가운데가 심하게 훼손되어 있다.
경찰복을 풀어헤친 채 방구석에 기대앉은 퀭한 얼굴의 성복.
종구에게서 걸려온 전화를 받지 않고 있다.
잔뜩 겁에 질린 성복은 간유리 너머에 집중한 상황.
보니 누군가의 실루엣이 서성이고 있다.
문 앞에 엎드리더니 방 안을 들여다보는 누군가.
문짝을 열려 하는지 덜컹- 거린다.
잠궈 놨기에 열리지 않자 사라지는 누군가의 실루엣.
발소리를 쫓으니,
옆 면의 여닫이 문 앞에 멈춰 선다.
곧이어 방문의 문고리가 슬며시 돌아간다.
성복의 퀭한 얼굴이 달아오른다.
88. 읍내 정육점 / 아침
정육점 앞으로 종구의 차가 서고,
종구와 이삼이 내린다.
내부로 들어서니 4명의 친구들이 모여 막걸리를 마시고 있다.
군복 앗따. 아침부터 뭔 일이냐?
종구 다 온겨?
병규 철영이는 돼아지가 새끼 난다고 못 온디야.
자리에 앉아 병규의 막걸리를 뺏어 들이키는 종구.
단숨에 사발을 비우고는 친구들을 둘러본다.
89. 어느 산속 계곡 / 아침
폭포 앞 바위에 다다른 일본인.
제단이 훼손되어 있고,
가방과 옷가지는 열려있고 흐트러져 있다.
누군가가 뒤진 흔적이 분명하다.
긴장된 얼굴로 사방을 둘러보는 일본인.
순간 저 멀리 한 지점에 수많은 새떼가 모여 허공을 도는 것이 보인다.
뭔가 문제를 느낀 듯,
급히 옷을 주워 든 일본인이 그곳을 향해 달린다.
90. 읍내 정육점 / 아침
침묵.
모두가 종구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다.
병규 니 시방 장난치는 거 아니제?
종구 (끄덕)
병규 진짜제?
종구 이.
양복 엄창 걸어봐야.
종구 .......
군복 니는 이 개새끼... 이런 엄중헌...
종구 (엄지를 이마에 대며) 엄창 걸어 뿐다.
그러자 놀라는 친구들.
“오메.”, “씨벌.”, “이것이 뭣이다냐.” 하고 한마디씩 떠든다.
병규 참나... 괴기 좀 더 썰어줘?
종구 (도리도리)
병규 느그들은?
친구들 되았다.
병규 다덜 속 든든헌 거제?
친구들 이.
그러자 병규가 앞치마를 풀고 일어나 나간다.
종구가 쳐다보자,
병규 뭐더냐. 앞에 안 스고. (친구들에게) 가자. 얼릉.
(시간 경과)
트럭의 짐칸에 실리는 쇠 파이프와 농기구들.
그것을 옮긴 군복이 짐칸에 올라타면,
이삼과 추리닝이 이미 앉아 있다.
군복 (차체를 치며) 출발!
그 소리에 운전석에 앉은 양복이 트럭을 출발시킨다.
달리는 트럭에 앉은 굳은 얼굴의 친구들.
91. 어느 숲 속의 오솔길 / 낮
파란색 트럭 앞에 선 일본인.
헐떡이는 그의 얼굴에 당혹감이 가득하다.
트럭의 문이 열려있고 박춘배가 없어진 것이다.
바닥으론 훼손된 양초들이 어지럽다.
긴장한 일본인이 사방을 살피더니 발자국을 발견해 낸다.
쫓아가니 저 편으로 향해져 있다.
안달이 난 그가 발자국을 쫓아 달린다.
소리 문을 박살내는 소리.
92. 일본인의 집 / 낮
제단의 문이 나가 떨어지자
그것을 걷어찬 종구와 이삼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종구 (코를 막으며) 씨벌...
피범벅이 된 바닥과 매달리거나 방바닥에 널브러진 훼손된 닭들.
제단 위에 놓인 박춘배의 사진과 소품들.
종구 개 잡귀겉은 새끼...
밖에선 친구들이 기다란 흉기를 하나씩 든 채 집안을 뒤진다.
변소며 부엌까지 뒤졌지만 일본인은 보이질 않는다.
부엌을 뒤지던 양복이 사진 현상 용품들을 걷어차며 나가자,
병규 없냐?
양복 이.
병규 저 짝도 좀 봐봐.
종구는 박춘배의 사진을 들여다보고 있다.
시체처럼 보이는 사진과 살아생전의 사진.
(양복) 오메. 쩌거 뭐여. 뱅규야! 일로 와봐야! 어이!
종구가 급히 밖으로 뛰쳐나가자,
저 편으로 박춘배가 보인다.
시체 같은 그가 맥없이 서 있다.
병규 머여, 쩌거...
흥분한 종구가 긴장하는데,
박춘배가 비틀거리며 다가온다.
미라 같은 몰골의 그가 두 눈을 뒤집고 비틀대는 것이 영화 속의 좀비 같다.
다 같이 모여 그를 바라보는 친구들.
겁에 질려 덜덜 떠는 이삼.
병규 에에? 일로 오잖여.
양복 오지 마라. 오지 말아라...
그럼에도 박춘배는 계속 걸어온다.
그러더니 친구들의 앞에 멈춰 서서 그들을 둘러본다.
썩은 내가 진동하는지 저마다 코를 막거나 인상을 찌푸린다.
군복 이런 씨... 뭐냐? 여서 뭣허는겨?
순간 박춘배가 군복을 노려보더니,
아가리를 벌리고 다가선다.
군복 뭐, 뭐여, 씨벌!
놀란 군복이 들고 있던 곡괭이 자루를 휘두른다.
소리 퍽-
고개가 돌아간 박춘배의 살갗이 째지며 피가 흐른다.
굉장히 아플 텐데 아파 보이질 않는다.
군복 괘, 괜찮허요? 앗따, 놀랬잖소.
그러자 또다시 군복에게로 달려드는 박춘배.
군복이 다시 한번 자루를 휘둘러 맞춘다.
군복 이 냥반 뭐여. 이거...
또다시 빠르게 달려드는 박춘배.
놀란 군복이 계속해서 때리자 이삼이 끼어든다.
이삼 그만허요!
군복 (멈추면)
이삼 사람헌티 뭣허는...
그 순간 이삼에게 달려드는 박춘배.
박춘배가 이삼의 목덜미를 잡더니 얼굴을 물어뜯기 시작한다.
이삼 으아악!
이삼의 얼굴 가죽이 벗겨져 피가 분수처럼 솟아오른다.
그제서야 넋이 나가있던 친구들이 달려든다.
박춘배를 잡아 끌거나, 이삼을 잡아 끌거나, 박춘배를 두들겨 팬다.
그럼에도 멈추지 않고 이삼의 머리통을 물고 뜯으려 하는 박춘배.
이를 보다 못한 종구가 돌덩이를 가져와 박춘배의 뒤통수를 찍는다.
소리 퍽-
피가 줄줄 흐르는 박춘배가 고개를 돌려 종구를 보더니
털썩- 꼬꾸라진다.
그 바람에 박춘배의 손길에서 벗어난 이삼.
친구들이 달려들어 끌고 가 지혈하고 난리다.
그 사이 쓰러졌던 박춘배가 기이한 모습으로 벌떡 일어난다.
으르렁거리며 종구에게 다가가는 박춘배.
빈 손의 종구가 겁에 질려 뒷걸음치며,
종구 오지 마라... 오지 마라...
순간 아가리를 벌리고 달려드는 박춘배.
종구의 멱살을 잡더니 함께 나뒹군다.
이를 본 친구들이 달려들어 몽둥이질을 하지만 꿈쩍도 않는 박춘배.
바닥에 깔린 종구의 얼굴을 물려 한다.
종구가 사력을 다해 저항하다 질끈 눈을 감으면,
소리 푹-
양복이 박춘배의 머리통에 쇠스랑을 날렸다.
자루가 부러져 나가고,
손잡이만 쥔 양복을 박춘배가 뒤돌아본다.
옆 통수에 쇠스랑이 박혀 있는 상황.
겁에 질린 양복이 뒷걸음을 치다 넘어진다.
그러자 달려가 양복을 덮치는 박춘배.
양복 으아악!
박춘배에게 깔린 양복이 때리고 밀쳐대지만 어림없다.
또다시 친구들이 달려가 몽둥이질을 하고 잡아 끌지만 여전히 꿈쩍도 않는다.
그렇게 박춘배의 아가리가 양복의 볼을 물고 찌이익- 당기는데,
종구 비껴!
소리 깡-
종구가 박춘배에게 삽 자루를 날렸는데,
의도인지 우연인지 쇠스랑을 더 깊이 박아 넣었다.
시뻘건 두 눈의 박춘배가 고개를 돌려 종구를 본다.
소리 깡-
더욱 깊이 박혀 버린 쇠스랑.
그러자 대노한 박춘배가 다시 날아드는 삽 자루를 잡더니,
자루를 으스러뜨리며 두 동강을 내버린다.
무지막지한 상황에 겁에 질린 친구들.
박춘배가 부러진 삽을 종구의 면상에 던진다.
댕- 하고 맞은 종구가 쌍 코피를 흘리며 휘청거리다 자빠지면,
박춘배가 일어나 종구를 향해 다가간다.
모두가 오금이 저려 부들부들 떨기만 하는 상황.
뒷걸음치던 종구는 제단에 등이 닿아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다.
종구 (돌멩이를 집어 던지며) 이... 이...
그런데 무슨 일인지 박춘배가 탁- 하고 모가지를 꺾더니,
사지를 꺾어대기 시작한다.
-마치 흥국이 그랬던 것처럼- 바닥에 쓰러져 온몸을 뒤트는 박춘배.
심장이 터질 듯 헐떡이는 종구의 얼굴.
친구들 역시 넋이 나간 상황.
종구의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질 않는다.
순간 눈 앞의 박춘배가 허리를 크게 꺾기 시작한다.
소리 우두둑-
핏발 서린 눈으로 괴성을 내뱉으며 죽어버리는 박춘배.
넋이 나간 종구가 가쁜 숨을 내쉰다.
그렇게 모두가 박춘배로 인해 넋이 나간 상황에서
양복이 뭔가를 봤는지 숲 속을 쳐다보고 있다.
거리가 있어 확신이 안 서는지 유심히 바라보는 양복.
보니, 눈이 마주친 일본인이 머리를 숙여 숨는다.
양복 쩌... 쩌그...
모두 (보면)
양복 (가리키며) 쩌그. 하나 더 있다.
종구가 보니, 숲 속에 수그리고 앉은 일본인이 보인다.
(군복) 머여... 꿩이여? 대그빡만 처박고...
종구의 호흡이 달아오른다.
종구 잡어... 잡어야 디여...
모두 (종구를 보면)
종구 그 새끼여... 그 새끼... 잡어!
종구가 일어나 일본인을 향해 내달린다.
그러자 친구들도 일본인을 향해 흉기를 들고 달려간다.
일본인이 겁에 질린 얼굴로 놀라 달아난다.
93. ‘어느 산속의 추격전’ 시퀀스 / 낮
93-1. 오르막길
죽을 힘을 다해 비탈을 기어오르는 일본인.
괴성을 지르며 일본인을 쫓는 친구들.
몸이 불편한 종구는 미끄러져 넘어지고 난리다.
93-2. 내리막길
뛰어내리다 미끄러진 일본인이 굴러 내려간다.
진흙탕에 처박히는 일본인.
아파할 새도 없이 일어나 절룩이며 비탈을 내려간다.
구르고 뛰고 점프하며 내리막을 내달리는 친구들.
종구와는 거리가 벌어졌다.
93-3. 계곡
계곡을 첨벙이며 뛰어 건너는 일본인.
지친 그가 뒤를 보면,
저편의 친구들이 비탈을 내려오고 있다.
잠시 후 계곡을 건너는 친구들.
뒤늦게 홀로 계곡을 건너는 종구.
93-4. 오르막길
풀숲을 헤치며 오르막을 오르는 일본인.
멀찌감치 떨어진 친구들을 쫓아 기어오르는 종구.
94. 어느 산속의 절벽 / 낮
지쳐 헐떡이며 나무 사이를 달리는 일본인.
갑자기 절벽이 나타나자 놀라 멈춘다.
다리에 힘이 풀렸는지 주저앉는 일본인.
뒤로 친구들의 목소리가 가까워진다.
절박한 얼굴로 어쩔 줄 몰라 하는 일본인.
(시간 경과)
숨을 헐떡이며 나무를 지나는 종구.
절벽 앞에서 멈춰서면 저 옆 바위 위로 친구들이 보인다.
다가가보면 사방이 까마득한 절벽.
일본인은 보이질 않는다.
종구 머여. (친구들에게) 머여.
군복 씨벌... (추리닝에게) 니 일로 와봐.
군복과 추리닝이 왔던 길로 되돌아가면,
숨이 턱까지 찬 종구의 얼굴에 낭패감이 차오른다.
종구 잡어야 디여...
되돌아가려는지 걸음을 뗀 종구가 주저앉는다.
체력이 다 된 듯.
종구 잡어야 디여...
병규 종구야...
종구 (울며) 뱅규야... 우리 효진이... 효진이 살려야 디여...
(일어나며) 이 개새끼... 우리 효진이...
걸음을 떼려던 종구가 다시 주저앉는다.
그러자 고개를 처박고 울기 시작한다.
종구 뱅규야... 그 새끼 꼭 잡아야 디여... 그 새끼...
그 순간 일본인은 그들의 바로 밑 절벽에 매달려 있다.
죽을 힘을 다해 매달린 일본인의 공포에 질린 눈.
그러던 중 손을 놓치며 떨어지는 일본인.
나뭇가지를 부러뜨리며 땅바닥에 처박힌다.
소리 쿵-
이 소리를 들은 병규가 절벽 밑을 내려다보면,
밑엔 아무도 없다.
일본인은 급히 절벽 면面으로 기어간 상태.
엄청난 통증에도 입을 틀어막고 신음을 삼키는 일본인.
난데없이 오줌 줄기가 코 앞으로 떨어져 내린다.
흙이 튀어 얼굴에 묻는다.
자기도 모르게 울음을 터뜨리는 일본인.
그런데 울고 있던 그의 눈이 뭔가를 발견했는지 갑자기 살벌함으로 변한다.
저 편 숲 속에 선 무명.
일본인을 빤히 노려보고 서 있는 무명이다.
소리 천둥소리
95. 국도 – 트럭 안 / 낮 / 비
국도를 달리는 트럭.
비바람을 맞으며 짐칸에 탄 친구들.
거센 비가 와이퍼를 뚫고 차창을 뒤덮는다.
낙담한 얼굴로 운전 중인 종구.
부인에게 전화를 걸지만 받지 않는 모양이다.
그 옆의 조수석엔 양복과 이삼이 타고 있다.
이삼은 온 얼굴을 셔츠로 칭칭 감아 놓은 상태.
96. 어느 산속 - 국도 / 낮 / 비
낭떠러지와 같은 비탈길을 빠르게 내려가는 무명.
그 뒤를 미끄러지고 구르며 쫓는 일본인.
97. 국도 – 트럭 안 / 낮 / 비
종구가 전화를 끊고 다시 전화를 걸며,
종구 지발 받어라... 지발...
커브길이 나오자 핸들을 꺾는 종구.
순간 맞은편에 대형 화물차가 경적을 울린다.
중앙선을 넘었었는지 급히 핸들을 조정하는 종구.
순간 우측의 비탈에서 시커먼 뭔가가 튀어나온다.
강렬한 충격이 전해지며 차창이 박살 나더니
뭔가를 밟았는지 트럭이 들썩인다.
중앙선을 넘어 급제동을 하는 트럭.
텅 빈 도로엔 빗소리뿐.
의식을 잃었는지 축 늘어진 이삼.
피 흘리는 양복이 정신을 차리더니 종구를 보며,
양복 (겁에 질려) 뭐, 뭐여. 씨벌... 사람 아녀?
핸들에 처박힌 종구가 고개를 드니 피범벅이다.
겁에 질린 얼굴로 백미러를 보니 아무것도 보이질 않는다.
차에서 내리자,
저 멀리 중앙선에 차에 받힌 것으로 추정되는 사람이 쓰러져 있고,
친구들이 그를 내려다보고 있다.
겁에 질린 종구가 거칠게 호흡하며 다가간다.
피범벅이 되어 사지가 꺾인 피해자에게 다가가는 화면.
친구들이 덜덜 떨며 종구를 뒤돌아본다.
순간 굳어지는 종구의 얼굴.
세찬 빗속에 널브러진 시체는 다름 아닌 일본인이다.
사지가 부러진 처참한 몰골.
넋이 나가 헐떡이는 종구.
갑자기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사방을 둘러본다.
희한하게도, 쭉 뻗은 국도가 양 끝까지 텅 비어 있다.
친구들과 눈을 마주하더니,
다시 일본인을 내려다보는 종구.
98. 일광의 집 / 낮 / 비
법당.
상 위로 쌀알들이 쏟아진다.
그것을 들여다보는 일광.
일광 (어이가 없다는 듯) 허...
일광의 반응에 맞은편에 앉은 악화된 상태의 작부와
그녀의 모친(작부모)이 불안해한다.
작부모 뭣이 큰 문제라도...
고개를 돌려 창 밖 멀리에 위치한 산맥을 보는 일광.
손에 쥔 염주를 만지작거리며,
일광 허...
99. 국도 / 낮 / 비
축 늘어진 일본인을 끌고 가드레일로 향하는 종구와 친구들.
가드레일 밖으론 천길 낭떠러지다.
온 힘을 다해 일본인을 들어올려 내던지는 그들.
일본인이 낭떠러지 밑으로 굴러 떨어져 간다.
멀어지고 멀어지다 시선에서 사라지는 일본인.
그럼에도 시선을 떼지 못하는 종구.
산 위에서 이 모습을 내려다보는 무명.
그녀가 고개를 돌려 갓길에 주차된 트럭을 보면,
조수석에 드러누운 이삼이 신음을 내뱉고 있다.
운전석 차창 앞에 놓인 액정이 깨진 종구의 핸드폰이 울린다.
부인으로부터 걸려온 전화다.
100. 곡성 병원 / 낮 / 비
계단을 오르는 거지꼴의 종구.
절룩거리며 기다란 복도로 나와 끝자락의 병실로 향한다.
상기된 얼굴로 덜덜 떨리는 손을 뻗어 병실 문을 열면,
부인과 장모와 의사에게 둘러싸여 침상 위에 앉은 효진이 보인다.
초췌하지만 정신이 든 모습.
덜덜 떨리는 종구의 입술.
종구 아가... 괜찮애?
효진 (끄덕)
종구 (울먹이며) 참말로... 괜찮애?
효진이 울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자 엉엉 울며 효진을 끌어안는 종구.
부인도 울고, 장모도 운다.
그런 그들을 한참 동안 비추는 화면.
101. 일광의 집 / 낮 / 비
작부모와 작부가 대문으로 향하고 있다.
둘을 배웅하는 일광남1과 일광녀.
마루에 선 일광이 시선을 저 멀리 산맥으로 옮기더니,
일광 허... 버러지겉은 놈... 미끼를 생켜부렀구마...
102. 전종구의 집 / 밤
비가 그친 전경.
일광이 벌려놓은 것들이 정리되지 않아 기괴한 모습의 마당.
-흥국의 방과 흡사해 보이는- 여전한 효진의 방.
장모 얼릉 마셔. 쭈욱. 옳제.
대접에 담긴 한약을 마신 효진이 자리에 눕는다.
부모를 향해 미소 짓는 효진.
종구가 방 안의 것들을 치우려 하자,
장모 기양 냅둬.
종구 지저분혀서 글제라.
장모 일단 냅두라고. 이것이 다 그 냥반 덕이여.
종구 ......
장모 효진인 내가 데꼬 잘텡께
얼릉 가 쉬어. 피곤헐 거인디.
부인 그려. 어여 시치고 자.
종구 .......
순간 종구의 전화가 울린다.
보니 ‘일광’이란 발신자.
수신을 거절하는 종구.
103. 국도 – 일광의 차 안 / 밤
운전 중인 일광.
일광 (휴대폰을 끊더니) 모지리 겉은 새끼...
그의 눈 앞으로 음산한 국도가 펼쳐진다.
104. 어느 병원 / 밤
음침한 복도.
불 꺼진 병실.
널찍한 병실엔 이삼 뿐이다.
TV에선 뉴스가 나오고 있다.
전주의 어느 건강식품 회사가
환각 성분이 든 야생 독버섯을 첨가해 판매했다며,
관련자 모두를 체포했다는 내용이다.
그것을 복용한 피해자 다수가 죽거나 다쳤다며
정확한 피해를 조사 중이란다.
이 소리를 듣는 건지 마는 건지 모를 붕대를 칭칭 감은 이삼의 얼굴.
INSERT) 숲에서 튀어나오는 일본인.
INSERT) 자신을 물어 뜯는 박춘배.
눈을 감고 혼란스러워 하는데 핸드폰이 울린다.
105. 오성복의 집 / 밤
경찰 병력들과 순찰차와 구급차들로 혼란스런 전경.
넋을 놓고 담배만 태우는 소장과 경찰들.
그들의 사이로 택시에서 내리는 이삼이 보인다.
(시간 경과)
성복의 방 앞에 선 이삼.
이삼 사, 삼춘....
겁에 질린 얼굴.
그의 시선을 따라 방 안을 보면,
살해 당한 노인과 맞은 편 벽에 기대앉아 중얼거리는 성복이 보인다.
성복 저년이... 저년이 귀신이여... 저년이...
두 눈이 풀린 초췌한 얼굴의 성복.
열어젖힌 제복 사이로 피부병이 보인다.
경찰2 이 집 주인 할매요.
이삼 .......
경찰2 삼춘이 약을 드셔분 것 같소.
저것 땜시 온 동네가 난린디...
이삼이 방구석을 보니
건강식품 박스와 함께 뜯겨나간 포장지들이 더미를 이루고 있다.
경찰2 시방 모시고 가야헝께
변호사도 알아보고. 대비허라 불렀소.
워치케 보먼 삼춘도 피해장께...
성복이 이삼을 바라본다.
시커먼 두 눈이 구멍같다.
INSERT) –첫 만남에서- 자신을 내려다보는 일본인의 얼굴.
가삐 호흡하는 이삼.
106. 전종구의 집 / 밤
집 앞에 서는 일광의 차.
차 속의 일광이 종구에게 전화를 걸지만 받지 않는다.
한숨을 내쉬며 차에서 내린 그가 대문을 향해 가는데,
난데없이 코피가 쏟아진다.
일광 뭣이여. 씨벌...
처음엔 몇 방울이던 게 쏟아지는 양이 장난이 아니다.
비틀거리며 차에 기대 손수건으로 틀어막는 일광.
숨쉬기도 거북한 듯.
(무명) 여긴 뭐더러 온겨?
보니, 가로등 밑에 선 광기 어린 얼굴의 무명이다.
코피로 인해 말도 못하던 일광이 갑자기 구토를 시작한다.
주저앉은 그의 앞으로 다가가는 무명.
무명 가.
일광 .......
무명 어여.
겁에 질린 일광이 비틀대며 차에 오른다.
휘청거리며 떠나는 차량을 바라보던 무명.
다시 가로등 밑의 어둠 속으로 향한다.
107. 전종구의 집 / 밤
안방.
잠을 이루지 못하는 종구와 부인.
종구가 한숨을 내쉬며 핸드폰을 들여다본다.
일광에게 걸려온 수많은 부재중 통화들.
고민 끝에 일어나 옷을 챙겨 입는다.
부인 어디 가는디.
종구 금방 갔다 오께.
대문 밖.
일광에게 전화를 거는 종구.
종구를 바라보는 무명의 시선.
전화를 받지 않는 일광.
그러자 차량에 오른 종구가 어디론가 향한다.
108. 곡성 성당 / 밤
어두운 성전.
문이 열리고 이삼이 들어선다.
싸늘한 얼굴로 예수를 쳐다보더니,
그곳을 향해 걷는 이삼.
붕대를 푼 얼굴엔 흉측한 상처가 드러나 있다.
소리 거칠게 문이 열리는 소리.
109. 일광의 집 / 밤
구둣발로 들어서는 일광.
숨을 헐떡이며 법당으로 뛰어가더니,
촛불에 불을 붙인다.
붙었던 불이 소리를 내며 사그라진다.
불길한 의미인지 두려워하는데,
소리 집기가 깨지는 소리.
보니, 피 흘리며 꿈틀거리는 까마귀다.
열린 문으로 날아와 부딪혀 죽은 듯.
이를 보고 더욱 더 겁에 질린 일광.
순간 핸드폰이 울리지만 받지 않는다.
110. 일광의 집 주변 도로 – 종구의 차 안 / 밤
운전 중인 종구.
상대가 전화를 받지 않자 생각에 잠긴다.
저 편으로 일광의 집이 보인다.
111. 일광의 집 / 밤
차에서 내리는 종구.
무쏘는 보이질 않는다.
집 안으로 들어서면,
텅 빈 집 안.
커다란 집기를 제외하고 웬만한 소품들은 사라지고 없다.
불안해지는 종구의 얼굴.
112. 광주 간 국도 – 일광의 차 안 / 밤
차 속을 꽉 채운 짐들.
저 멀리 ‘광주’라 쓰인 표지판이 보인다.
겁에 질려 운전 중인 일광의 모습.
113. 곡성 성당 / 밤
이삼이 의자에 앉아 예수를 바라보고 있다.
싸늘하고 흉측한 얼굴의 그가 갈등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의 호흡이 가빠져 간다.
114. 광주 간 국도 – 일광의 차 안 / 밤
복잡한 얼굴로 운전하는 일광.
일광 씨벌... 씨벌...
순간 차창 너머로 빨려들 듯이 다가온 날벌레가 퍽- 하고 터진다.
와이퍼를 작동시켜 얼룩을 지워내는 일광.
그러자 수많은 날벌레들이 연달아 부딪히기 시작한다.
죽은 날벌레들의 얼룩으로 차창이 뒤덮여 더 이상 와이퍼도 소용없다.
겁에 질린 일광의 차가 시야를 잃고 휘청거린다.
결국 차량을 세우고 마는 일광.
고함을 내지르며 차에서 뛰쳐나와 숨을 헐떡인다.
주변을 보면,
안개 자욱한 국도엔 파리 한 마리 보이질 않는다.
혼란 가득한 얼굴로 식은땀을 흘리는 일광.
저 멀리 광주의 불빛이 보인다.
갈등하는 일광.
생각을 마친 그가 차량에 오른다.
그리고는 유턴을 하며 불빛을 등진다.
‘곡성’이라 쓰인 표지판이 스쳐 지나자,
급박한 얼굴로 종구에게 전화를 건다.
일광 나, 날세, 일광. 자네 어딘가.
115. ‘광주 간 국도 - 일광의 차 안’과 ‘일광의 집’ 교차 / 밤
종구 도사님은 어디요?
일광 나가. 나가 죽을 죄를 지어붓네.
암 것도 묻지 말고, 당장 딸내미헌티 가보게. 지금 당장.
종구 아, 말을 허요. 왜 그는지.
나 시방 여 도사님 집이요.
일광 니미... 당장에 자네 집으로 가게.
종구 아, 먼 소릴...
일광 아, 얼릉 가라고!
종구 그르지 말고, 말을 해보소. 왜 그런가.
일광 나가... 나가 잘못 봐 붓어. 점꽤를... 그 냥반이 아녀.
종구 (잠시) 고것이 먼 소리요.
일광 어, 엄헌 놈헌티 살을 날려부렀네.
종구 .......
일광 아까 자네 집에서 웬 여자를 봤는디...
나가 대 실수를 해붓네...
종구 .......
일광 나가 대 실수를 해붓어.
그 일본 놈이 아니라... 그 여자가 귀신이여.
종구 .......
INSERT) 이동하는 차 속의 시선. 집 앞 가로등 밑의 어둠.
일광 다 고년 짓이여.
종구 .......
일광 얼릉 가보게. 나도 가고 있응께.
종구 그러믄... 그 일본 놈은.... 그 놈은 뭣인디?
일광 그년을 잡을라든 것이여.
그년헌티 죽을 사람을 살릴라든 것이고.
종구 ........
일광 나 같은 무당이여.
INSERT) 이동하는 차 속의 시선. 가로등 밑 어둠 속의 무명.
종구 (잠시) 그 여자... 혹시 허연 옷 입었소?
일광 (놀라면)
종구 대답허쇼.
일광 봐, 봤는가?
종구 젊은 여자요?
일광 그, 그렇네...
종구 .......
(시간 경과)
차량에 올라 급히 출발하는 종구.
116. 국도 – 오솔길 – 이삼의 차 안 / 밤
운전 중인 이삼.
핸들을 잡은 그의 손엔 묵주가 감겨있고,
조수석엔 낫자루가 놓여있다.
국도를 벗어난 그의 차가 오솔길로 들어선다.
117. 당산나무 오솔길 / 밤
커다란 당산나무 앞.
이삼의 차가 선다.
잠시 고민하더니 낫과 플래시를 들고 내리는 이삼.
118. 전종구의 집 / 밤
차에서 내린 종구가 가로등 밑을 쳐다본다.
초조한 얼굴로 보지만 아무도 없다.
그러자 대문을 밀치며 달려들어가는 종구.
효진의 방으로 가니
효진은 없고, 잠든 장모뿐이다.
종구 (장모를 깨우며) 애기 어딨소.
장모 (잠결에) 이, 이?
종구 아 효진이 워딨냐고!
당황스러워하는 장모.
급히 안방으로 뛰어가는 종구.
잠든 부인만 있을 뿐.
다급한 종구가 밖으로 뛰쳐나간다.
119. 일본인의 집 / 밤
겁에 질린 얼굴의 이삼.
이삼 처... 천사군대의 영도자이신...
성 미카엘 대천사여...
낫과 묵주를 쥔 손이 덜덜 떨려온다.
플래시로 주변을 비추며 일본인을 찾는 이삼.
수많은 까마귀들에 둘러싸인 박춘배의 시신이 보인다.
120. 전종구의 집 주변 골목 / 밤
좌우를 두리번거리며 골목을 뛰는 종구.
갑자기 속도를 줄인다.
저 편 골목의 어둠 속에 보이는 누군가.
종구 효, 효진아...
가까이 다가가자 어둠 속의 모습이 드러나는데,
효진이 아니다.
종구 (뒷걸음질 치며) 머, 머여.
무명 오밤중에 으디 가는겨?
그제야 여자가 무명임을 알게 되는 종구.
떨리는 종구의 얼굴.
무명 시방 으디 가냐고.
종구 내, 내 딸 어딨어.
무명 ........
종구 내 딸 워딨냐고.
무명 요만한 여자애?
종구 그, 그려...
무명 효진이?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는 종구.
종구 그려.
무명 갸는 귀신에 홀려갖고 그런 거여.
종구 .......
무명 할매가 그러는디 그 왜놈이 귀신이랴.
그 놈이 갸 피를 말려 쥑일라고 그런 것이디야.
종구 .......
무명 그 왜놈 본 적 있어?
종구 개, 개 잡소리 허지 말고... 대답혀, 이 쌍년아...
우리 효진이 어딨어.
무명 왜놈 본 적 있냥께.
종구 우리 효진이 워딨어!
무명 니 아가 니 집에 있지 으딨어.
종구 집에 읎어.
무명 집에 있어. 쫌 전에 드갔어.
종구가 무명의 얼굴을 노려보며 조심스레 뒷걸음질을 치기 시작한다.
몸을 돌려 뛰려 하자,
무명 시방 가지 마.
시방 가믄 다 죽어.
걸음을 멈추고 돌아보는 종구.
무명 시방 가믄 니 식구들 다 죽는다고.
종구 그것이 뭔 소리여.
무명 그 왜놈이 니가 들오길 지달리고 있어.
니 식구들. 씨를 말려불라고.
종구 그... 그 놈은 죽었어...
무명 아니여.
그 놈은 죽는 놈이 아녀.
종구 .......
무명 쫌 있음 귀신이 기 들올 것이여.
그 귀신 본 적 있제?
종구 .......
무명 그 아짐니 집에서 봤잖여.
INSERT) 권명주의 집에서 본 일본인의 모습.
종구 꾸... 꿈이여...
무명 꿈 아니여.
121. 일본인의 집 / 밤
긴장한 얼굴로 멈춰 선 이삼.
그의 시선은 산자락의 새어 나오는 불빛에 머물러 있다.
나뭇가지에 가려진 그곳은 문인가 보다.
양철과 합판으로 엉성하게 만든 문.
그곳을 향해 조심스레 다가가는 이삼.
122. 일본인의 동굴 / 밤
문 틈 사이를 들여다보는 이삼의 눈.
내부는 오래된 동굴인 듯.
꺾여있어 중얼거림만 들려올 뿐
모습은 보이질 않는다.
떨리는 손으로 문을 여는 이삼.
내부로 들어가면,
거적을 뒤집어쓰고 앉아
떨고 있는 누군가의 뒷모습이 보인다.
기척을 느꼈는지 고개를 돌리는 누군가.
온갖 상처와 더러움으로 기가 막힌 몰골을 한 일본인이다.
그의 시선이 이삼의 낫으로 향한다.
123. 전종구의 집 주변 골목 / 밤
무명 내가 덫을 쳐 놨응께.
잡힐 때까정 여서 지달려. 그먼 되야.
INSERT) 전종구의 집 대문에 꽂힌 시들지 않은 금어초.
종구 너...... 너 뭐여.
사람이여. 귀신이여.
무명 고것을 왜 묻는디?
종구 니가 누군지 알어야... 니 말을 믿을 거 아니냐.
무명 기양 믿어.
식구들 살리고 자프먼 내 말 들어.
종구 너 뭐냐고!
무명 (잠시) 니 딸을 살릴락허는... 여자.
124. 전종구의 집 / 밤
부인이 경찰에 신고 중이다.
창고를 뒤져보고 마당으로 나오는 장모.
장모 아가!
부인이 내다보니,
효진이 대문 앞에 서 있다.
부인 효진아....
멍한 얼굴의 효진.
부인과 장모가 보이지 않는 것마냥 그들을 무시하고 부엌으로 향한다.
무서운 건지 놀란 건지 효진을 바라만보는 부인과 장모.
125. 전종구의 집 주변 골목 / 밤
종구 그... 귀신이 은제 오는디.
무명 벌써 와 있어.
126. 전종구의 집 / 밤
부엌에 앉아 꾸역꾸역 음식을 삼켜 넣는 효진.
그 양이 어마어마한 것이 걸신들린 사람의 모습이다.
부인 효진아...
127. 일본인의 동굴 / 밤
일본인이 이삼의 낫을 보고 있다.
이삼 (日) 마지막으로... 하나만 묻자.
最後に… ひとつ聞く。
(사이고니… 히토츠 키쿠.)
일본인 .......
이삼 (日) 도대체... 니 정체가 뭐냐.
お前、何者か。
(오마에 나니모노카.)
128. 전종구의 집 / 밤
열린 냉장고. 바닥이 드러난 그릇들.
마지막 음식을 다 쑤셔 넣은 효진이 트림을 한다.
그제야 눈 앞의 부인과 장모를 바라보는 효진.
부인 효진아...
대꾸도 않은 효진이 이제는 벽에 걸린 식칼을 본다.
129. 일본인의 동굴 / 밤
일본인 (日) 내 정체가 뭐라 생각하는데?
俺の正体がなんだと思うんだ?
(오레노 쇼타이가 난다또 오모운다?)
이삼 (日) 악마... 너는 악마야...
悪魔… お前、悪魔だ…
(아쿠마… 오마에 아쿠마다…)
일본인 .......
이삼 (日) 왜 대답을 못 해... 대답해...
なぜ答えない… 答えろ…
(나제 코타에나이… 코타에로…)
일본인 (日) 자네가 이미 말했잖나.
お前がもう言ったじゃないか。
(오마에가 모오 잇다쟈나이카.)
이삼 .......
일본인 (日) 내가 악마라고.
俺が悪魔だって。
(오레가 아쿠마닷데.)
130. ‘광주 간 국도 – 일광의 차 안’ 과 ‘전종구의 집 주변 골목’ 교차 / 밤
종구 벌써... 와 있다고?
무명을 바라보는 의심 가득한 종구의 얼굴.
소리 핸드폰 벨소리.
조심스레 핸드폰을 꺼내 보면 일광이다.
무명의 눈치를 보며 전화를 받는 종구.
일광 인자 거진 다 왔네. 자네 어딘가? 집에 갔는가?
종구 (눈치 보며) 시방... 그 여자랑 같이 있소.
일광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일광 절대. 절대 현혹되지 말게. 절대.
종구 .......
일광 그년이 뭔 말을 허든.
당장에 딸헌티 가야허네. 당장에. 알겄는가?
종구 .......
일광 알겄냐고!
전화를 끊는 종구.
무명 그 도사여?
종구 (끄덕)
무명 그 놈 말 듣지 말어. 그 놈도 한패여.
종구 .......
무명 그 귀신이 덫에 걸리믄 쩌 집 닭이 세 번을 울 것이여.
그때까정만 참어.
131. 일본인의 동굴 / 밤
일본인 (日) 그렇지 않나?
そうだろう?
(소오다로?)
이삼 .......
일본인 (日) 자넨 이미 내가 악마라고 확신했어.
그래서 여기까지 온 거야.
(낫을 가리키며) 그걸 들고.
お前はすでに私が悪魔だと確信した。
だからここまで来たんだろう。
それを持って。
(오마에와 스데니 와타시가 아쿠마다토 카쿠신시타.
다카라 코코마데 키탄다로오.
소레오 못데.)
이삼 .......
일본인 (日) 내가 누군지 내 입으로 아무리 말해봤자
니 생각은 바뀌지 않을 거야.
私が何者か、私の口でいくら言ったところで、
お前の考えは変わらない。
(와타시가 나니모노카, 와타시노 쿠치데 이쿠라 잇다토코로데,
오마에노 캉가에와 카와라나이.)
이삼 (日) 그렇지 않어. 그러니까 말해.
そんなことない、言え。
(손나코토 나이, 이에.)
일본인 (日) 거짓말 하지 마.
嘘を言うんじゃない。
(우소오 이운쟈나이.)
이삼 .......
일본인 (日) 지금까지 넌 그래왔어.
날 만나기 전부터 넌 의심했고.
그 의심에 확신을 더하려고 날 찾아왔던 거야.
これまでもお前はそうだった。
私に会う前から私に疑念を持ち、
その疑念を確信するためにここに来たんだ。
(코레마데모 오마에와 소오닷다.
와타시니 아우마에카라 와타시니 기넹오 모치
소노 기넹오 카쿠싱스루타메니 키탄다.)
이삼 (日) 아냐. 절대 아냐.
지금. 니가 솔직하게 말하면. 난 그 말을 믿을 거다.
違う、ぜったいに違う。
正直に言うなら、私は信じる。
(치가우. 젯타이니 치가우.
쇼지키니 이우나라, 와타시와 신지루.)
일본인 (日) 그럴 리가 없어. 절대.
넌 지금도 내가 악마라는 의심에 확신을 얻으러 온 거야.
そんなはずはない。絶対。
お前は今も、悪魔だと思いそれを確信しようと思っている。
(손나 하즈와 나이. 젯타이.
오마에와 이마모 아쿠마다토 오모이 소레오 카쿠싱시요오토 오못데이루.)
이삼 (日) 아니라고!
違う!
(치가우!)
일본인 .......
이삼 (日) 만약에... 니가 지금 악마가 아니라 말하고.
솔직한 정체를 밝힌다면.
그냥 돌아가겠다.
もし…お前が悪魔じゃなくて、
本当の正体を明かすなら、
何もせずに帰る
(모시… 오마에가 아쿠마자 나쿠데,
혼토노 쇼타이오 아카수나라,
나니모 세즈니 카에루.)
의심 가득한 눈으로 이삼을 바라보는 일본인.
132. 전종구의 집 주변 골목 / 밤
소리 닭 울음소리.
무명 인자 두 번 남았어.
종구 (초조함을 보이자)
무명 흔들리지 말어.
종구 그러믄... 하나만 묻자.
무명 뭣을.
종구 그 놈은 왜... 뭐 땜시 이러는 것인제.
무명 니 딸의 애비가 죄를 졌응께.
종구 (잠시) 무신 죄. 내가 무신 죄를 졌는디.
무명 니 딸의 애비가. 남을 의심허고.
죽일락허고. 결국엔 죽여 부렀어.
종구 그... 그것은 내 딸이 먼저 아파갖고 그런 것이제...
그것이 워치케...
소리 닭 울음소리.
무명 인자 한 번 남았어.
난감한데다 급박한 상황 속에서 초조해 하는 종구.
어떤 결심을 했는지 뒷걸음을 치기 시작한다.
그러자 종구의 팔을 붙잡는 무명.
무명 글지 말어.
초조한 눈길로 무명의 손을 내려다보는 종구.
그런데 그 너머 바닥으로 익숙한 모양의 머리핀이 보인다.
INSERT) 문방구에서 종구를 향해 머리핀을 보이는 효진.
종구의 호흡이 가빠온다.
무명을 보면,
그녀가 입고 있는 가디건.
INSERT) -요염을 떨며 목덜미를 긁적이는- 작부의 가디건.
INSERT) 야상을 입은 무명의 모습.
INSERT) 박춘배가 입고 있던 야상.
그 생각을 읽었는지 고개를 가로젓는 무명.
무명 아니여. 절대 아녀.
종구 (무명의 손을 떼어내며) 너구마... 죄다 니 짓이구마...
무명 아니여...
집을 향해 뒷걸음질 치는 종구.
종구 효진아...
무명 글지 말어...
뒷걸음질 치던 종구가 뒤돌아 집을 향해 달린다.
무명 안 디여!
골목으로 사라지는 종구.
무명의 흥분한 얼굴.
133. 일본인의 동굴 / 밤
긴장 속에 서로를 살피는 둘.
일본인이 결심을 했는지 진지한 얼굴로 입을 연다.
일본인 (日) 날 놔두고 그냥 가겠다고?
私に何もせず帰るだと?
(와타시니 나니모 세즈니 카에루다또?)
이삼 (日) 그래.
そうだ。
(소오다.)
일본인 (日) 그냥 가겠다?
何もせず帰る?
(나니모 세즈니 카에루?)
이삼 (日) 그래. 그냥 갈 거야.
そうだ、何もせずに帰る。
(소오다. 나니모 세즈니 카에루.)
난데없이 피식 웃는 일본인.
긴장하는 이삼.
일본인 (日) 누가 널 그냥 보내 주겠대?
誰がお前を何もせず行かせると?
(다레가 오마에오 나니모 세즈나 이카세루토?)
순간 말의 의미를 이해 못했는지 당황해 하는 이삼.
일본인의 두 눈이 붉어지며 사악한 미소를 지어 보인다.
134. 전종구의 집 / 밤
숨을 헐떡이며 대문을 들어서는 종구.
그러자 시들기 시작하는 금어초.
종구 효진아...
안방을 보니 아무도 없다.
종구 여보... 장모님...
나와보니 부엌에서 깜빡이는 불빛이 새어 나온다.
그곳으로 향하는 종구.
135. 일본인의 동굴 / 밤
이삼 (日) 그... 그게 무슨 소리야.
ど…どういうことだ。
(도… 도오이우코토다.)
일본인 (日) 여길 내려가고 말고는 니 의지가 아니라고.
ここを出られるかどうかは、お前の知るところではない。
(코코오 데라레루카 도오카와, 오마에노 시루토코로데와 나이.)
이삼 .......
일본인 (日) (웃으며) 나를 만져 보아라.
私に触れてみろ。
(와타시니 후레테미로.)
이삼 .......
일본인 (日) 유령은 살과 뼈가 없지만...
네가 보다시피... 난... 살과 뼈가 있다.
幽霊には肉と骨がないが…
お前が見る通り、私には… 肉も骨もある。
(유우레이니 니쿠토 호네와 나이가…
오마에가 미루 토오리, 와타시니와… 니쿠모 호네모 아루.)
겁에 질린 이삼의 호흡이 가빠진다.
그러자 일본인이 가방 속에서 카메라를 꺼내 들더니
이삼을 향해 조준한다.
이삼 (日) 뭐, 뭐하는 거야.
な、何をする。
(나… 나니오 수루.)
일본인 (日) 어찌하여 너희는 당황하느냐.
どうしてお前はおじ惑うのだ。
(도오시테 오마에와 오지마도오노다.)
이삼 (日) 하... 하지 마...
や… やめろ…
(야… 야메로…)
셔터를 누르는 일본인.
번쩍하고 터지는 플래시.
136. 전종구의 집 / 밤
긴장한 얼굴로 머뭇거리는 종구.
조심스레 부엌 문을 당겨 열면,
종구 아...
무너져 내리는 종구의 얼굴.
깜빡이는 형광등.
끝 편의 쪽문으로 부인과 장모의 시신이 보인다.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은 종구가 기이한 소리를 내뱉는다.
종구 아... 아...
소리 닭 울음소리.
바닥에 주저앉는 종구.
괴성을 내지르며 오열한다.
그런 그의 뒤로 효진이 모습을 보인다.
종구가 돌아보면,
효진은 구멍 같은 눈으로 종구를 내려다보고 있다.
효진을 노려보다 고함을 지르는 종구.
종구 효진아!
137. 전종구의 집 주변 골목 / 밤
소리 전종구의 고함 소리.
멍한 얼굴의 무명.
138. 일본인의 동굴 / 밤
필름을 감는 일본인의 털이 수북해진 손.
그의 손톱이 싯누렇게 자라나 있고,
뼈마디는 불룩해져 있다.
일본인 (日) 어찌하여 마음에 의심을 품느냐.
どうして心に疑いを持つのか。
(도오시테 코코로니 우타가이오 모츠노카.)
또다시 플래시가 터진다.
정신이 무너져 버린 것 같은 이삼의 얼굴.
일본인 (日) (필름을 감으며) 내 손과 내 발을 보아라.
わたしの手や足を見なさい。
(와타시노 테야 아시오 미나사이.)
이삼에게 터지는 플래시 불빛.
이제 일본인의 얼굴은 수포가 뒤덮인 괴물이 되어 있다.
일본인 (日) 바로... 나다.
まさに… 私だ。
(마시니… 와타시다.)
일본인이 거적을 젖히더니 웃는다.
발가벗은 끔찍한 몰골.
이를 목격한 이삼의 모든 부위가 떨려온다.
이삼 (묵주를 가슴에 대며) 주여...
139. 전종구의 집 주변 골목 / 밤 / 비
여전히 쭈그리고 앉은 무명.
그녀의 얼굴 위로 천둥 번개가 치더니,
빗줄기가 쏟아져 내리기 시작한다.
140. 전종구의 집 / 새벽 / 비
전경.
일광의 차가 다가와 선다.
차에서 내린 그가 긴장한 얼굴로 대문을 들어서면,
꽂혀있던 금어초는 어느덧 해골의 형상으로 시들어 있다.
-영화의 초반, 흥국이처럼- 마루에 기대앉은 효진이 보인다.
호흡이 가빠지는 일광.
상황을 둘러보더니 부엌으로 향한다.
들어가 보니, 벽에 기대 앉은 종구와
부인과 장모의 시신이 보인다.
혼이 빠져 나간 이마냥 반응 없는 종구.
이를 본 일광이 카메라를 들어 시신들의 사진을 찍는다.
그리고는 종구를 찍는다.
뷰 파인더에 담긴 종구의 모습.
소리 찰칵-
그의 사진을 찍더니 부엌을 나서는 일광.
남아 있는 종구의 얼굴 위로,
효진을 찍는 카메라의 셔터 소리가 들려온다.
눈물을 흘리는 종구.
종구 (중얼거리듯) 효진아... 괜찮애... 다 꿈이여... 괜찮애...
소리 차량의 트렁크를 여는 소리
무쏘의 트렁크를 여는 불안한 얼굴의 일광.
꽉 들어선 짐 중에 박스를 꺼내 연다.
그러다 손에서 미끄러지며 떨어지는 박스와 내용물들.
땅바닥에 –일본인의 집 다락방에서 보았던- 사진들이 흩어진다.
그것들을 주워담은 일광이 카메라와 함께 박스를 닫는다.
트렁크를 닫으면,
부엌.
화면 가득한 종구의 얼굴.
무쏘가 떠나는 소리가 멀어져 가자,
저 멀리 순찰차 소리가 다가온다.
INSERT) 놀이공원에서 환하게 웃는 종구와 효진, 부인, 장모.
INSERT) 놀이공원의 그네를 타고 환하게 웃는 효진.
종구 (중얼거리듯) 괜찮애... 우리 효진이...
아부지 경찰인 거 알제.... 아부지가 다 책임질껴...
소리 이삼의 흐느낌 소리가 커져간다.
141. 국도 – 이삼의 차 안 / 새벽 / 비
피투성이의 이삼이 운전 중이다.
정신이 나간 이마냥 흐느끼고 있다.
핸들의 쥔 그의 피범벅이 된 손.
그 손에 쥐어진 피 흐르는 묵주.
142. 일본인의 동굴 / 새벽 / 비
불 꺼진 내부.
문 밖의 빛이 스며 들어오고 있다.
그 빛으로 인해 보이는 괴물 같은 일본인의 처참한 시신.
F.O. / F.I.
비가 그쳤다.
문 밖의 빛이 스며 들어오고 있다.
일본인의 시신은 보이지 않는다.
143. 곡성 / 아침 / 흐림
운무가 짙게 깔린 웅장한 산맥.
곡성의 전경을 비롯한 여러 이미지들.
144. 어느 버스 정류소 앞 가게 / 아침 / 흐림
한적한 도로의 가게.
낡은 TV에서 뉴스가 나오고 있다.
곡성의 현직 경찰이 일가족을 살해했다며,
전주에서 생산된 불법 건강식품과의 연관성을 조사 중이라는 내용이다.
그 뉴스엔 관심도 없어 보이는 두 노인이 장기를 두고 있다.
그 중 한 노인이 문 밖을 보면,
평상에 앉은 일본인이 여자 아이와 장난을 치고 있다.
사람 좋은 모습의 일본인이 노인을 바라본다.
눈이 마주치자 웃음을 지어 보이는 노인.
일본인이 온화한 얼굴로 미소를 건네더니
저 옆에 세워진 하얀색 무쏘로 향한다.
아이에게 인사를 하며 조수석에 오르는 일본인.
문을 닫으면, 운전석의 일광이 보인다.
서로를 잠시 바라보는 둘.
일광이 선글라스를 쓰더니 차량을 출발시킨다.
저 멀리 멀어져 가는 무쏘를 비추는 화면.
서서히 뒤로 물러나면,
도로 한 가운데 서서 무쏘를 바라보는 무명의 치맛자락이 보인다.
바람에 흩날리는 머리카락.
차가운 얼굴의 무명.
그녀의 뒤로 한대의 차량이 다가오는 것이 보인다.
아무 반응 않던 그 차량이 무명을 통과하면,
곡성.7고.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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